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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2월28일 목요일 7 (제146호) 기 획 밀성박씨전국청년회는기해년정월선조묘역성묘행사를 기획 지난 10일 혹한의 날씨에도 제주를 찾았다. 본보에서 그동안 제주지역 박씨정착사를 취재하여 게재한바 있어 이 번청년회유적탐방에함께했다. 이번행사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쳐 진행된 가운데 선 조 묘역참배와 제주지역 청년들과 함께 교류하며 밀성재의 백년대계를잇자는취지로기획되었다. 첫날 10일은 밀직부원군 후(后) 제주 주부공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복야공 후 문림랑공 입도조 묘역과 후손들의 숭조 심을찾아볼수있는구구곡을찾았다. 밀직부원군 후 주부공의 휘는 선운(先雲), 임진왜란에 가 솔들을 데리고 제주 조천읍에 처음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크 게 번성하였다.대정읍 보성리의 잘 갖추어진 묘역은 2010년 조천우회도로공사로 인해 이장된 곳으로 후손들의 정성을 엿볼수있다. 종중의 순영 회장은 제주지역 청년들을 밀성재에 보내 함 께 할 것을 약속하고 찾아준 청년들에게 격려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전했다. 애 월 읍 금 덕 리 의 문 림 랑 공 후 제 주 입 도 조 묘 역 에 는 문 부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대거 함께 한 가운데 문부 회장은 청년들의 성의에 감사하다며 영동의 세덕사는 자주 찾았으 나 정작 밀성재는 찾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함께 할 뜻을 밝 히고구구곡까지함께했다. 문림랑공 제주 입도조의 휘(諱) 언(彦)으로 임진왜란 중 에 입도한 이래 청년들은 구구청년회를 조직하여 어른들의 종사를잇고있다. 문림랑공 제주입도조 선고(先考)를 비롯한 3대조 제단이 있는 구구곡 참배 후 가진 저녁만찬은 은산부원군파 제주문 중(회장 학용)에서 준비한 가운데,학용 회장을 비롯한 규남 종손,규현 전(前)도의원,경도 수석부회장,원철 도의원(환 경도시위원장), 창배 재무이사, 성기 청년회장, 문림랑공 문 부 회장과 임원진이 함께하면서 제주지역 밀성인의 교류의 장이되었다. 학 용 회 장 은 이 자 리 에 서 밀 성 재 와 추 원 재 를 찾 아 제 향 에 함께 하면서도 청년회를 찾지 못했는데 혹한의 날씨에도 제 주지역 선조유적탐방에 나선 청년들을 볼 때 반 갑 고 기 쁘 다 고 말하고 제주종중에서도 올봄 관광버스를 동원 경주와 밀 양지역 유적탐방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소개하고 청년회의 무궁한발전을기원한다며환영사에갈음했다. 순구 청년회장은 제주종중은 매년 밀성재 춘추 향사와 추 원재·보본재 향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서 더욱더 돈독한 애종과 친목을 다져오고 있어 항상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며 제주 종중을 본 받기 위해 찾아왔다고 말하고 제주지역 청년 들이함께할수있도록도와줄것을요청했다. 다음날인 11일은 은산부원군 후 감헌공파 제주문중 회관 과 입도조 후신(厚信) 공(公)을 비롯한 종중묘원을 찾았다. 입도조 휘 후신 공(公)은 약관에 문과 급제하여 통훈대부 홍 문관 정자(通訓大夫 弘文館 正字)직에 재직 중 참혹(慘酷) 한 세화((歲禍)가 계속되자 관직을 버리고 1580년경 제주에 처음정착하여제주지역박문의문호를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역사의기원은석기시대로까지거슬러올 라간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三姓)신화에 의하면 태고 에 븮고을나븯(高乙那), 븮양을나븯(良乙那), 븮부을나븯(夫乙那) 라고 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 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 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들 삼신인들은 븮벽랑국븯(碧浪國) 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특별자치도 동쪽해상으로 들어온 삼공주를 맞아 혼례 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그 후 븮고을나븯의 15대 후손 3형제 (후, 청, 계)가 당시 한국의 고대왕조의 하나인 븮신라 븯(B.C 57~A.D 935)에 입조(入朝)하여 븮탐라븯(제주특별자치 도의 옛 명칭) 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또 이때부터 븮탐라 븯는븮신라븯를섬기게되었다. 신라시조왕의 후예인 박성(朴姓)의 후예들이 본격적으로 제주에 입도하여 세거를 이룬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한다.은 산부원군파, 복야공파, 밀직부원군파, 연안공파, 공간공파 등의 후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이제 토착성씨인 고 (高), 양(梁), 부(夫)씨 못지않은 토호세족으로 번성하였음 을 알 수 있 다 .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밀양박씨 복야공은 밀성대군의 8世이고 휘는 언인(諱 彦 仁)으로 태사공 휘 언부(太師公 彦孚)의 아우로 고려 때 벼 슬이 벽상삼중대광평장사(壁上三重大匡平章事) 상서좌복 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고 밀직군(密直君)에 봉(封)해졌 다. 아들 직신(直臣)과 장(璋) 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직신 (直臣)이 고려조에 문림랑으로 문림랑공파의 파조가 되었 다. 문림랑공의 후예의 주요 세거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하기 어려우나 문림랑이란 고려조의 문산계 29계(階) 가운데 28계의 종9품으로 주로 문학이 있는 선비들로 뽑아 충당하였듯 문림랑공(휘 直臣)은 학문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으며,고려의 수도 개성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유추해 보나 그 후손들의 세거지 변천에 대해서는 따로 기술(記述)했던 자료는 전해지지 않으나 국내에는 경북 김천과 칠곡, 경남 진주, 전남 영광, 장성, 제주 등으로 제주지역 입도조의 상계 와 입도경로는 문림랑공의 12세 참봉공 휘 건(建)의 아들 5 형제 중 셋째 휘 용경(勇卿)이 무과에 올라 훈련원 첨정으로 있을 때 연산군의 폭정으로 사직하고 전남 영광군 군동면 이 흥산 아래에 입향 시거(始居)하면서 한양에서 전라도에 이 거하게된다. 첨정공(휘 勇卿)은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장남 기(琪)의 호(號)는 월정(月汀)으로 1537년에 진사시에 올랐다. 조산 지(鳥山志)에 의하면 1542년에 장성부사를 역임하였고, 그 의 장남(휘 希顔)은 현재 영광의 세거지에 남았고,첨정공의 차남 경(經)은 진사, 그의 아들 인식(仁植)은 참봉, 손자 맹 손(孟孫)은 어해장군 내금위로 아들 언(彦)이 제주도에 처 음입향한입향조이다. 제주입향조 휘(諱) 언(彦)은 1564년 태어나 궁중에서 어 물·육류·식염·소목·거화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사재감의 주부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 숙인 경 주김씨와 부인 의인 진주강씨와 함께 지금의 제주시 연동에 우거(寓居)하게되었다. 이후 1599년 아버지(어해장군 휘 맹손)와 막역한 성윤문 (成允文)이 제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재회하게 된다. 성(成) 목사는 같은 서인(西人)으로 입향조 언(彦)을 친아들처럼 여기며 보살피면서 애월읍 고성리(古城里)에 집터를 마련 해주어 이거하게 된다. 그리고 고성리의 지명을 항파두리 (缸坡頭里)라 하여 지금도 전해진다. 항파두리란 그 지역의 지형이 물 항아리 같고 인접한 남쪽에 장태(지금의 고성리 남쪽 안오름 뒤편 장털왓)가 있어 물 항아리에 장태로 물을 부어 넣는 형국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런 곳에서 살면 약200 여년은 아무 탈 없이 부자가 되어 잘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 름이라한다. 성목사의도움으로 주택과사당(祠堂)을건립하는 도중1 599년 어머니 경주김씨가 69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지금의 제주시 연동 영통악 간열봉 62번지에 안장시키고 연화촌(제 금의 제주시 연동)에서 모친 소대상(小·大喪)을 치른 후 160 1년현재의애월읍고성리(항파두리)로이주하였다.이때성 목사는 수복(守僕)까자 딸려 보내기도 하여 당시 수복이 살 았던 곳을 ‘수복이터’ 불리며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 사당에 제사지내기 위해 파놓은 우물터는 지금도 주민들은 ‘박서밭’ 라한다. 이주 후 사당에 시조대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춘·추로 제향 을 받드는 등 타고난 숭조(崇祖) 정신으로 후손들의 교육에 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듯 입향 이후 수백여세대로 번성하면 서 후손들 또한 실전된 입향조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등 3대(代) 추모제단을 제주시 노형동 구구곡에 약 100여평 의부지를마련설단하고매년추원보본의정성을다한다. 특히 선조의 추모제단이 있는 구구곡의 명칭을 따 창립된 ‘구구청년회’는 지역의 성씨문화를 선도하는 모범적인 종친 단체로부상하고있다. 밀성(밀양)박씨 은산부원군파의 후손 입도시기는 지금으 로부터 약430여년전인 서기1580년경으로 입도조(入島祖) 는 신라 시조대왕의 51세이며,밀성대군(휘 언침)후(后)은 산부원군휘영균(諱永均)의9세손후신(厚信)이다. 입도조 휘 후신(諱 厚信)公은 약관에 문과 급제하여 통훈 대부 홍문관 정자(通訓大夫 弘文館 正字)직에 재직 중 세화 참혹(歲禍慘酷)하여 관직을 버리고 가솔(家率)과 가재도구 등을 범선(帆船) 3척에 싣고 곽지포구로 입도 정자천(正字 川) 상류인 애월읍 어음2리 1744번지 주변에 정착한다.정자 천은 애월읍 금성리와 함림읍 귀덕리 사이를 흐르는 금성천 이며 인근 주민들 사이에 정지내로 불러져 왔는데 이는 상류 의 정자왓과 더불어 입도조 박후신의 직함 정자공에 기인한 것이며 현재 정착지 부근의 지명도 정자왓으로 불러지고 있 고 부근의 지명에 박별지동산(朴別紙童山), 손청(손님을 모 시는 곳), 매매기터(생활용품을 매매하는 곳)라는 곳이 있 으며 1988년 제주대학교 이청규(李淸圭) 교수의 고고학 연 구팀에 의한 유허지 발굴조사에서 고려청자,이조백자,분청 사기편등이 다량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상과 지명에 대한 연 관성을 추정한바 있다.(이청규 교수는 지금 경북대학교에 재직중이다) 제주도의 토착성씨 고(高)·양(梁)·부(夫)씨의 세 성씨와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후신(厚信)公의 후손들은 대대로 학 문을 탐구하고 후학을 육성하는 선비의 가문으로,지금은 남 자후손 기준 약3,400여명으로 번성 명문거족으로서의 기반 (基盤)을갖추고있다. 근세에 후손 용후(用厚, 1908~1993) 公은 일제 강점기 제 주 대정읍 인근의 광선의숙, 신유의숙, 일진의숙, 해방이후 에는 대정중학교 등 중등 교장으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하 면서 제주도의 지명, 방언등을 연구한 향토사학자로 「제주 도 옛 땅 이름 연구」등 7편의 저서와 「탐라지」외 3편의 고문 서를 번역하였으며 「제주도지」, 「서귀포지」, 「제주 유맥(濡 脈) 600년사」를 집필하였고, 븮홍조소성훈장븯(紅條素星勳 章),븮제주도문화상븯등을수상받았다. 또, 항일운동가로 영순(榮淳 1916-1947)公은 애월읍 하귀 야학소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계몽운동및 항일활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복역했으며, 그후 도일(渡日) 독립운동 중 일본에서 운명을 달리했다(일제하의 재판기록문을 종친회 에서 보관하고 있으며,1995년 독립유공자포장을받았음) 종친회 7대회장 두준(斗準, 1932-2006)公은 북제주군의 회초대의장을역임하며기초의회의기반을다지기도했다. 후손들은 선조의 훌륭한 유산을 소중히 보존하고 숭조와 애종을 실천하기 위하여 1967년 밀양박씨 은산군파 제주도 종친회(이하 도종친회)를 조직하고 매년 입도 이하 선조의 벌초를 합동으로 하는 등 체계적인 위선사업을 하고 있어 타 의모범이되고있다. 특히 지난 2017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숙원사업인 회 관준공식을갖고안정적인종회운영의기틀을마련했다. 지상 3층 연건평 150평의 회관은 1층 상가, 2층 사무실, 3 층 주택으로 사업비 5억 5천여만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 으로 위용을 갖추어 3천5백여 후손(남자기준)들의 구심점 이 되고 있을 뿐 만아니라 제주지역 박성(朴姓)의 자부심이 기도 하다. 특히 격주년으로 발행되는 은산회보(銀山會報,2 018.제8호)‘는 제주지역 성손은 물론 밀양 경주의 소식을 전 하는 길라잡이가 되고 있으며, 전 후손을 등재한 주소록은 멀리 떨어져 있는 후손 간 교류의 가교가 되는 등 가장 모범 적인운영으로여타문중의부러움을받고있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와함께하는제주 지역입도조유적을찾아서 은산부원군파 제주종중의 학용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만찬은 제주지역 각 문중의 대표자간 교류 의장이 됨으로서향후연합종친회성격의모임을기대해볼 수있을것같다. 청년회순구회 장이 밀직부원군후제주입도조주부공휘선운公의묘역에서헌작하고있다. 밀직부원군파,문림랑공파,은산부원군 파입도조묘역참배하고지역청년들과 교류의장만들어 복야공후문림랑공파제주문중 청년회원들이 문림랑공후제주입도조주부공묘소를참배하고있다. 눈속의구구곡의3대조제단을참배하고기념촬영을하고있다. 은산부원군파제주문중 입도조 정자공(휘 후신)의 묘소를 참배하고 입구의 표지석에서 기해년 새해각오를다졌다. 은산부원군파제주종친회관을찾아임원진과 함께하고있다. 밀성박씨밀성부원군행산공파대동보편수위원장박수옥 밀성박씨 밀성부원군행산공파 (杏山公派) 신간대동보 편찬안 내 밀성박씨밀성부원군행산공파대종회는1997년정축보수보이후20여년이경과함 에따라최근새롭게개발된전자보서시스템을활용하여신간대동보를발간하기로 하 고2018년11월부터인터넷및우편등으로수단접수를진행중에있습니다.정해진 수보기간동안에가능한많은현종님들이동참하여소중한우리의혈통에대한근본 을 올바르게하고가보(家寶)로자손만대보전될수있도록적극적인협조를당부드립 니다. ◆수단접수기한:2019년4월 30일 ◆수단접수처: 인터넷:홈페이지www.hengsan.co.kr 포털사이트(네이버,다음)“행산원”검색 우편:경남거제시아주동해와루106동606호,박행산 문의:010-9689-2525, 사무실 055-731-1206,팩스055-731-1214,행산대동정보원 ※ 수 단 이 접 수 되 지 않은 종 원 은 전 자대 동 보에 등재되 지 않으 며 , 추 후 등 재 시 수 단 비 용 이 점 차 증 액될 예정이오니가급적정하여진기한내에완료될수있도록협조바랍니다. ※수단유사명단:◆편수위원장 박수옥(010-7402-6572) ◆ 찬성사지파 박수경(010-7918-7567),박규석 (0 10-9370-2358), 박진흠 (010-3541-2344), 박정현 (010-4331-9093) ◆ 광산지파 박정웅(010-8561-2747), 박 을수 (010-3572-3335) ◆ 풍산지파 박재화(010-2557-9317), 박인천 (010-3808-1909) ◆ 전주지파 박찬우( 0 10-8642-7276),박철균 (010-3251-7489)◆소윤공지파 박봉호(010-4655-1956),박광희 (010-4420-6822) ◆ 진사공지파 박경무(010-4952-1153),박종대 (010-7276-0607)◆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일원 박규석(010- 9 370-2358),박준석(010-3829-9809) ※ 각 소문중 별 수단유사가 정해지지 않은 종중은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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