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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월31일 목요일 6 (제145호) 관향조 종친회 ‘자랑스런밀성인상’ 부문별수상븣영광의얼굴들 박순구청년회장이 ‘자랑스런밀성인상’수상자와함께하고있다.좌측부터박진국,박병립,박철균,박순구청년회장,박재동,박재 두,박상진순(順) 지난해 12월 1일 ‘제1차 전국밀성인성손화합한마당전진대회’를 기해 각 분야에서 밀성대군의후 예로 자부심과 긍지를 높여온 성손들에게 밀성재를 상징할 수 있는 ‘자랑스런밀성인상’ 수상자로 각 부분별선정하여숭조부문 박상진, 박재두, 애종부문 박재동, 박철균, 육영부문 박병립, 박진국 대종회명예회장등6명의훌륭한종원을선발하여시상한바있어이번호에수상자들소개해본다.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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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신라 일성왕릉 제12대 참 봉으로 도임, 2년의 봉직기간 성심을 다해 봉심하였고, 이 기 간 동안 타고난 숭조심으로 선후배 참봉으로부터 추앙을 받 았다. 초당 선생의 숭조심과 형제애는 오우당(五友堂)에서 엿볼 수 있다. 선조의 위패를 봉안하여 향사하고 종족(宗族)을 회 동(會同)하여 우모(寓慕)하는 정각(亭閣)이 없는 것이 한 (恨)이 되어 오던 중 현재 거주하는 곳에 현대식 건물로서 신 축하고 선조의 위패와 유물을 봉안하고 매일 조석으로 찾아 봉심하고 선생의 5형제가 수시로 모여 우애하고 있어 향리의 칭송이자자하다. 특히 어릴적부터 출입해온 대소 문중에서의 역할은 독보적 이다. 밀성재 이사 , 은산부원군파 대종회 이사, 상동면 종친회장, 밀 성박씨대종회 고문을 맡아 종중발 전에 헌신해 왔으며, 1990년 밀성 대군단 제향 초헌관으로 헌작하였 다. 백세를 바라보는 97세의 고령임 에도 밀성재 춘추향사의 집사분정 기 및 천권을 직접 붓으로 써오고 있으며, 매년 갖는 세배행사에 청 년들에게 교훈이 되는 덕담으로 청 년들을 깨우고 있다.이에 지역 유림과 각종 단체에서 예절 및 인성교육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유도회 상동면 분회장, 대한 노인회 밀양시지회 부지부장, 상동면 도덕성 회복협의회장, 상동면 할아버지선생 초중학생 예절강사, 상동면 노인회장 등왕성한활동으로노익장을과시한다. 이는 곧 각 단체의 표창으로 이어졌고, 서원과 왕릉의 제관 에 천거되기도 한다. 2015년 문예춘추 문학상 신인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매년 시집을 발간, 숭조와 애종 등창작활동으 로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선조와 형제 자녀들의 일대 기를 알아보는 가전(家傳) 3집을 발간하여 가문의 약사를 후 세에전하고있어초당선생의숭조심에감복할따름이다. 뱚숭조부문 박상진 고문 1천5백 여 세대 산청군 박씨 성손을 비롯한 밀성재와 청년 회,경남본부 및 경남 여성회가 성손간 우애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박재동 산청군 종친회장의 선구자적 혜안과 헌신적인 공로때문이라하겠다. 박 회장은 고려 사헌부(司憲府)규정(糾正)휘 현(鉉)의 26 세손으로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에서 아버지 휘 의상(義 尙) 公과 어머니 담양전씨 복호(福好)여사의 장남으로 1935 년4월25일태어났다.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부창부수(夫唱婦隨) 신안 주씨재순(在順)여사와사이에3남2녀를두었다. 매사에 예(禮)와 도덕(道德)을 숭상하며 탁월한 추진력과 부지런함으로 일관하여 1974년 주식회사 동명식품을 설립 중 견기업으로 성장시켜 동남권에서는 제일의 국수생산업체로 TV 연속극 백년의유산의 촬영지가 되는 등 업계에서도 두각 을보였다. 특히 탁월한 지도력은 산청초등학교. 진주남중학교 동창회 장을 비롯 사회단체장으로 이어졌으며, 국가에 기여한 공로 를 인정받아 진주시장, 진주세무서장, 경상남도의 성실납세 자와 유공자표창, 국 세청장, 기획재 정부장관 겸 부총리의 표창을 수상했 다. 투철한 숭조심과 종친을 사랑하는 마음은 박씨산청군종친회장으로 추 대되어 5회에 걸쳐 연임토록 하였으 며, 이 기간 동안 회관건립에 앞장서 2억7백만원을 헌성함으로서 관내 67 0여세대 종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 7억여원을 모금하는 계기 가 되어 아름답고 웅장한 회관을 건립함으로써 종원들의 구 심점과소통의공간을만들었다. 또한, 경주 시조대왕의 춘추항례와 종중의 연례행사인 한 마음축제에 관광버스 55대, 국수 4천여박스, 읍면분회 식대 1 천5백만원,박씨종친회경남본부 회관건립성금 1천만원 등 거 액의 특연금을 헌성함으로서 박씨산청군종친회가 전국에서 제일가는 모범종친회로 우뚝 설 수 있었으며, 이는 박씨종보 한빛신문 제정 대한민국박씨지도자대상으로 이어져 회장님 의숭고한뜻이만방에전해지게되었다. 특히청년회각종행사에적극참석하여청년들을격려하며 함께 어울리는 등 고령에도 불구하고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 며몸소실천하는등청년들의로망이되었다. 뱚애종부문 박재동산청군종친회장 박철균 지도위원은 밀성박씨 행산공(휘 세균) 후손으로 19 45년 전북 전주시 풍남동(현 한옥마을)에서 대목장(大木匠) 으로 전주시 천도교에 몸담으며 전북 교구 재정을 관리하고 독립자금 뒷바라지로 평생을 살아온 찬문(燦汶)公과 어머니 인동장씨사이의4남2녀중막내아들로태어났다. 박 지도위원의 애종정신에는 남다른 성장과정이 있다. 천 도교(天道敎)에 몸담으며 동학군으로 활동하며 도사(導師) 종법사(宗法師)전북교구장 등을 역임한 조부(휘 성근)와 조 부를 내조하고 함께 활동을 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할머니 경효당(敬孝堂) 여사, 고모할머니의 부군인 풍암 이병춘 선 생(독립유공자, 애족장 추서), 선대인(先大人, 아버지)은 천 도교 전북교구장으로 조부와 풍암 이병춘 선생 등 평생을 독 립운동에 헌신하며 가산을 독립자금에 투자하였다. 그러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조부는 사망하였고(아리랑 1955년 4월호 보도), 조국광복은 보았으나 가산이 독립자금으로 들어감으 로 써 궁 핍 한 환 경 에 서 전 쟁 중 피 난 길 에 장 자 를 잃 었 고 그 후 유증으로어머니를잃었다. 선대인(先大人, 아버지)은 전매청 과장과 전북대학교 사학 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나 비명에 아버지를 여의고, 전쟁 중에 아들을 보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금을 전폐하고 음주 로 세월을 보내는 등 가정형편은 날로 어려워 졌다.남은 형제 5남매는 뿔뿔이 생활하다가 부분적으로 모여 살았지만 더욱 기울어졌다. 다행히 선대인에게 5살 때 천자문을 6살에 대학 을 읽다가 6븡25 사변으로 중단하였으나 이후 가세는 결국 학 업을중단할수밖에없었다. 이에 선대인의 제자이자 외가 자형( 失兄)되는 건축기업 사 장은 “너희 아버지에게 받은 은공을 너에게 보답하고 싶다 나 에게서 기술을 배워 후계자가 되었으면 한다”고 제의해 와 우 선 군복무부터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원입대하여 전방에서 복 무 중 월 남 파 병 소 식 에 자 원 해 1 9 6 5년 10월 맹호부대 1진으로 파병되어 복무하고 귀국하여 장기복무를 신청 직업군인으로서의길을걸었다. 유년시절부터 직업군인이 되기까 지 어려운 환경에 오직 애종 애족 밖 에 없었다. 직업군인이 되어서 근무 지마다 종친회를 찾아가서 활동하며 종친간친목과애종을실천해갔다. 직업군인으로서 탄약 업무에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 로 최고의 위치를 독차지 하였고, 신임 받은 하사관으로 탄약 문제 발생 시 전국을 다니며 해결하는 해결사로 탄약시험관, 주임원사, 탄약정비 중대장으로 전역, 보국포장을 수상하였 다. 전역 후 종중의 잡일을 하면서 종사에 매진하는 한편 파월 단체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본인도 고엽제 후유증 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다른 전우를 먼저 생각하였으며, 대한 민국 상이군경회 전북지부 지도부장과 총무부장을 역임하였 다. 2016년 종중 어른들의 권유와 무엇인가 숭조사업을 해야겠 다는 결심으로 600여㎞ 거리 경주의 신라 파사왕릉 참봉으로 도임하여 봉심하던 중 오릉보존회 박낙규의 압력과 횡포에 의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 종친으로서 해야 해서 는 안 되는 일을 당하면서도 숭조와 애종을 실천하며 밀성재 이사, 행산재 이사 그리고 청년회 지도위원으로 청년회 행사 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여 청년들의 큰형으로 솔선수 범하였다. 종중일에몸담으며함께 해주었던내자(內子)진천인 임무 석에게 감사하다는 박 지도위원은 사이에 1남 3녀를 두어 모 두 훌륭하게 성장시켜 장녀와 삼녀는 전업주부로 차녀는 치 의학석사로 병원을 운영하고 아들은 국가공무원(행안부)으 로복무하는등다복한가정을이루고있다. 뱚애종부문 박철균지도위원 박진국 회장은 충헌공(휘 척)의 후예로 1941년(신사) 경남 창원시 북면 무동에서 졸은처사(拙隱處士, 휘 석우)공의 4남 4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향리에서 뛰어난 인품과 덕망으 로 칭송을 받아온 선부군의 영향으로 종사(宗事)에 관심을 갖고성장하였다.고 등학교를마치고해병대전역후동명목재공무과장으로근 무하며 세계 제일의 합판공장 24개 라인의 기계보수 유지책 임을 맡아, 우리나라 최초로 합판을 수출하는 굴지의 목재 기 업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하고 탁월한 성실함으로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 자회사인동명물산의기술이사및말레시아주재이사를겸 직하면서 합판생산 기계 및 보일러를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싱가폴,인도네시아,중국,필리핀,파푸아뉴기니에서 납품 설 치하였으며, 지구 최남단인 오스트랄리아(호주)의 타스마니 아 섬에서 뉴칼립푸스라는 원목을 수입하여 국내 합판 공장 에 공급하는 등 수출과 국내합판제조 기술 향상에 혁혁한 공 로를인정받아퇴직후에도자문역할을맡아왔다. 그러나 밀성재는 청년들이 미래를 책임져야할 중대한 일이 나 아직 청년회 조직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2001년 뜻있는 청 년들을 규합하고 당시 대종회 임원님들의 협조 속에 2001년 4 월 14일 창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할 때 지도위원으로 참여하 여청년회활성화에큰힘이되었다. 창립이후개최된크고작은행사에적극참여하여청년들을 뒷받침 하는 등 청년회 창립 때부터 청년회의 정신적 스승으 로청년들을지도하여지금의청년회가있게되었다. 현직에 근무하면서부터 종사에 참여하여 재부종친회 총무, 밀성박씨충헌공파 이사, 총무, 상임부회장을 맡아오다 2009 년충헌공파대종회장과밀성재부회장을맡았다. 특히 신라유리왕릉 제17대 참봉으 로 2006년 5월 27일 도임하여 해박한 보학·예절 상식으로 숭덕전 운영과 제례 등 전통문화를 후예에게 전달하 는데 노력하여 경모재와 밀성재가 타 문중의 모범이 되는데 중추적인 역할 을하였다. (사) 신라오릉보존회 총본부 이사 와 감사를 역임하였으며, (사)신라숭덕전릉참봉협의회 이사 장, (사)숭덕전보존회, (사)신라시조왕숭모회 부이사장 등 종친회 요직을 맡아오면서 투명,보학,예절 중심의 운영은 20 15년밀성박씨대종회장,박씨부산종친회장으로이어졌다. 제14대 밀성박씨대종회장으로 취임하여 난관에 봉착된 성 역화사업을 훌륭하게 이끌어 전국 밀성인에게 긍지와 자부심 을 심어주었으며,2015년 제39대 박씨부산종친회장으로 취임 하여 곧바로 인재육성을 위한 장학기금을 쾌척하고, 청년회 및 여성회 창립을 취임일성으로 강조하여 이제 그 결실을 보 게되었다. 부산본부 연합청년회는 박 회장님의 지도력으로 이제 훗날 부산본부를 이끌어 나갈 귀중한 인재로 자리했으며, 여성회 또한 본부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있어 부산본부 미래 전망을 밝게 하고 있으며, 항상 청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어 청년들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어 항상 고마운 회장님으로영원히기억될듯싶다. 그리고 박 회장의 숭조·육영 정신과 해박한 예절상식은 지 역 유림에서 놓치지 않아, 2011년 동래향교 의전장의, 2012년 성균관전학을 거쳐 2014년 성균관유도회 부산광역시 유도회 본부이사에 이어 현재 동래향교 재단 이사로 지역 유림계를 선도하고있다. 박회장은김해인 김임선(金任先)여사와의사이에아들 성 용(成庸)딸경애(慶愛),경미(慶美)등1남2녀를두고있다. 뱚육영부문 박진국회장 박병립 이사장은 ‘오직 남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수식 어가 항상 따른다. 신라왕손으로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한국 식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Oblige)를 다하는 사람으로 도불린다. 1922년생으로 은산부원군 후 충간공 후손으로 대구 달성군 다사면 달천동(달랫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틈틈이 달 천서당을 기웃거리며 독학으로 천자문과 몽몽선습을 배우는 등 남다른 자질이 있어 촉망받은 어린아이였지만 12살 되던 해 ‘뇌 막 염 ’ 앓 고 난 후 듣 는 것 말 하 는 것 을 잃 어 버 린 ‘장 애 자’자라야했다. 아버지 범이 공(公)은 죄책감으로 고향에도 갈 수 없어 어 린 병립을 데리고 발길 닿는 곳마다 방랑생활을 하다 경기도 부천에 정착하여 건축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장래 를 위해 건축기술 가르쳤다. 이때 어린 병립은 누구보다 착실 하게미장일을배워그분야의최고기술자가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부인 이육주 여사를 만났고, 함께 공사판 을 전전하며 성실하게 일했다. 6븡25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하 면서도 일을 하였다. 강원도에서 공사판과 미장이 일로 번 돈 과 인부들에게 밥해주어 벌었던 돈을 합해서 600만원 모두를 전 쟁 으 로 인 해 폐 허 가 된 학 교 교 실 1 2 칸 을 짓 는 데 쓰 라 고 기 증했다. 첫 육영사업으로 600만 원을 낸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큰일이었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공사판에서번돈으로땅을매입했다. 박 이 사 장 은 아 버 지 가 하 시 는 일 을 도 우 기 위 해 부 평 옹 진 중학교 설립을 위해 또 현금 60만원을 학교 설립을 도왔다.이 에 아버지는 새 힘을 얻어 열심히 하였으나 결국 다른 사람에 게넘기고대구로옮겨갔다. 전쟁 직후 대구 신천동 주민들은 비싼 물 때문에 곤욕을 치 르고 있어 박 이사 장 부부는 300만 원 의 거 금 을 들 여 관 정 을 파 상 질 의 음용수를 주민들에게 공급하였 다. 1965년 경산 자인면에 50만원의 예산으로 도서관을 짓고 ‘자숙도서 관’이라 하여 자신들처럼 배우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농촌 학생들에 게 도서관을 지어 선물하였던 것이 다. 이후 자숙도서관은 1966년 경 산 군립도서관으로 새롭게 개관하 기에이른다. 1972년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육영사업을 대구에서 이루게 된다.20년전에개교한경산여자중학교가살림이어려워폐교 직전 우연한 기회에 인수를 하게 된 것이다. 학교를 맡자마자 먼저 땅을 사서 운동장을 넓히고 낡은 교실도 헐고 새로 짓는 데 많은 돈을 들였다.물론 학교 건물은 손수 지었다.경산여자 중·고등학교의 이사장(팔성학원)으로 본격적인 육영사업을 시작한것이다.1975년창녕대성중고등하교,1977년상주여자 상업고등학교를 세우고 1982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따 로분리하여좋은선생님을많이모셔훌륭한학교를만드는데 힘썼다. 1988년 경산의 팔성학원, 상주의 육주학원, 창녕의 대 성학원을통합‘육주학원’재단이사장에취임하였다. 1999년 10월 이육주 여사는 경산에 위치한 경산대학교재단 이사장의 일을 맡게 되어 훌륭한 학교로 성장시켰으며, 이후 로도 노인요양병원 등 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오직 남 을위해태어난사람’의별칭을얻게되었다. 숭조사업에도남다른열정이있어밀양밀성재동서재를지 어 기부하였고,정기적으로 밀성재,숭덕전,창녕의 추원재 등 선조 재사 도색을 손수 맡아와 현존하는 근세의 인물 중 가장 추앙받는인물로평가할만하다. 뱚육영부문 박병립육주재단이사장 박재두 회장은 1945년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에서빈농의아 들로 태어나 육군하사로 만기 전역 후 1970년 철도청에 입사, 1989년 퇴직하고 지금의 뉴 동해관광호텔을 손수 짓고 관광 업에 뛰어들었다. 매일 매일에 충실하고 남의 탓을 하지 않으 며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는 관광지 동해시에서 안정적인 기 반을다질수있는원동력이되었다고전한다. 그리고 동해시 향토기업으로 한번 찾아 준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호텔을 찾았던 고객 들은 아침에 호텔을 나서며 프런트에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 는다. 호텔을 경영하면서 지역의 각급 단체장을 맡으면 꼭 성 공을이루는신화적인인물로도유명하다. 2008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동해시에 박씨종친회를 창립 하여 탄탄한 기반을 조성하였고, 2014년 강원도본부 회장에 취임하여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활성화의 초석을 다지는 등 종친회에도 많은 기여를 해왔다. 이밖에도 삼척 입향조 휴천 공종회 회장을 맡아 재사(齋舍) 숙모재를 건립하고, 휴천공 의 현손 정촌(鼎村, 16대조)공 종중의 회장을 맡아 어려운 여 건에서도 퇴락한 재사(齋舍) 봉사재(奉思齋) 정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 새롭게 일신하였다. 그리고 당시를 회고하며 총 무(영호, 현 회장)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며 종원들에게 그 공을돌린다. 그리고 정촌공의 아들 셋 중 막내 종중인 천곡문중의 회장 을 맡아 15대조부터 11대조까지 실전된 묘소를 찾는데 노력 하였으나 찾지 못해 김제 삼송재 등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 설 단을 세우고 향화를 받들도록 하였으며, 48년째 회장으로 종 중을이끌어가고있다. 특히10대조부의묘역이험지에있음에도석물을운반키위 해 도로를 개설하여 석물을 세울 때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진리를 신조 로 삼고 5대조까 지 모두 석물을 갖추는 등 갖추는 등 타고난 숭조심으로 종중사에 큰 업적 을남기기도하였다. 1993년 동해향교 장의로 유림계에 발을 디딘 박 회장은 2002년 58세에 동해향교 전교를 맡아 동해지역 유림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우리나 라 최연소 전교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 부관장이 다. 130여개에 달하는 각종 공로패와 감사패 그리고 각급 기 관장의 표창장과 2012년 제39회 관광의 날 수상한 대통령 표 창은그의행적을더듬어볼수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예전에는 3년의 시묘를 하는 것이 당연 시되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1년으로 또 6개월 그러다 지 금은 3일 탈복을 하고 아님 어떤 이는 출상한 당일 탈복을 하 는사람들을볼수가있다. 시대 변천에 따라야 한다는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한 것을 당연시하는것또한문제라하지않을수없다. 그러나 박 회장은 1967년 선고(先考),1991년 선비(先삽)께 서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 줄곧 시묘를 이어온 것이다. 부모 님, 조부님, 증조부님, 고조부님과 먼저 간 동생의 묘소가 있 는 선영에 매일 아침 봉심과 함께 1천2백평의 묘원을 돌아보 며 잡 초 를 뽑 고 지 난 날 의 일 과 와 이 날 있 을 일 을 고 (告 )하 며 살아생전과똑같이얘길나눈다. 오죽하면 지역 사람들이 내기를 할 정도이다. 새벽시간 박 회장이어디에있는지말이다. 청년회 지도위원으로 청년회는 물론 경주의 숭덕전, 밀양 의 밀성재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매년 지역종친 가족과 함 께 찾아 참배하고 청년회에 큰 보탬이 되고 있어 청년들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어 현대사회의 큰 귀감이 되고 있는 현종(賢 宗)이다. 뱚숭조부문 박재두 회장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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