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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할것이요. 이며 벼슬하고 있는자는 기쁘나 마음은 위태로운 것이다. 다스림에는 百姓을 벼슬하여 八A亨이라 했던 일이 련志、에 상세허 기록되여 았다. 없으니 벼슬에 있는 자가 感心을 줄이지 못하면 반드시 天뺨을 잃을것 이라 하였으 같음이 良心을 保存하는것만 대개 先親命으로 聖君의 治世에 出{士했지만 본래의 마음은 여기에 있지 니 대개 任綠을 目的으로 삼지 않고 오로지 學文으로 本 바탕을 삼았던 것이다. 않았거늘 林果에 물러가 노닐며 歲月을 보내고 鋼堂이라 縣板하여 그뭇을 解除되어 돌아와 世事에 뭇이 없어 山水間에 노닐더니 硬年에 嘉樹 고을 보였으나 대개 朱子의 鋼을 지켜 能한 일을 당한다한 가르침을 암味한 大平松듭村에 移居하였다. 것이다. 先生은 일찌기 江陽李R 太子홉事 譯 公實의 따님에게 장가틀어 2男 하지만 삼가 橫心橫官篇과 詩中에서 i뽑上A(위상인=강태공)은 熊虎亨으 2女를 낳았다. 로 돌아오는데 江東에 뉘가 있어 關驚와 벗하자 맹세 했나 時L 의 풍년 長男 請가 承文인데 벼슬은 正郞이고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요. 號는 g!下와 百姓이 太平임을 노래하네한 詩句를 읽 어 임을 使뭄에게 말하니 次男은 譯가 熙文인데 泰仁 縣藍이고 號은 tf:村이다. 보건데 어찌 참으로 길이 가고 돌아오지않아 끝내세상을 잊었던 것이리오. 松짧이다 長女는 姜f뽑成이고 次女는 李碩柱인데 넓"導이다. 義理를 밝게 뚫어 보고 天命을 기쁘게 따름으로써 조그만한 출세에 戀戀 同知中樞의 男에 士林은 察誼이고 書林은 軍資藍 主歸이고 {需林은 習讀官 하지 않고 차라리 참다운 내본성을 保全하려한 것이다. 이다. 泰仁의 男에 世林은 縣藍이고 彦林은 判事이고 係林은 通贊이다. 않음이 鋼하지 鋼하지만 天理에는 道가 A生엔 先生의 그렇다면 女는 金敵인데 大提學이다. 以下 養不盡 됐이다. 생략한다. 것이다. 분명한 선생이 이곳에移居 하게된것은 姜家가 三嘉에았고 大平은 三山이 수려하게 亨年 87世 였다. 世宗 E未 (西紀 1439年) 2月 2 日 西時에 碩命하시니 體關은 경남 합천군 용주면 봉기리 爛金洞 西坐原에 安著하였고 基開은 둘러쌓여 있고 그안에 마을이 平輔하고 아늑하여 有事時 숨을수도 았고 있어 가히 나올수도 鳳基마을 正中에 重建하여 後孫틀의 짧械와 짧宿所로 하고있다 드디어 洞里앞 큰들 子孫에게 전할만한 곳이 였다. 獨山이 가운데 王山亨을 짓고 遠近의 學子들을 맞아들여 道學을 講明하여 成就 한 이가 많더니 이곳에는 지금도 古家 名族과 틀난 그위에 았어 큰선벼가 많다. 子孫들이 그遺風을 世훌훌하여 몇 代사이 에 官印을 차고 이 亨子에 오른 일컬어 掛印亨또는 이 亨子를 八A 이 있었기로 고을 사람들이 - 22- 사람이 %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