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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표經博士) 등의 명 칭 이 『삼국사기』 에 나오고, 일본에 『논어』 와 『천자문』 을 전한 아직기(呵直|技) , 왕인(王仁)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학에서 석전의 의식을 봉행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에서는 648년(진덕여왕 2)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에 건너가 그곳의 국학을 찾 아 석전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682년(신문 왕 2)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또한 717년(성덕왕 16)에는 당나라로부 터 공자와 10철 및 72제자의 화상을 가져 와서 국학에 안치하였다는 기 록이 있어, 석전 의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고 려에서는 국학에 문묘를 모셔 놓고 석전을 올렸고 왕이 직접 헌작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1398년(태조 7)에 성균관을 설치하여 국립 최고학부의 기능을 다하게 하였으며,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4성, 10철과 송조6현 등 21위를 봉안하고 양무에 우리나라 명현 18위와 중국 유현 94위 등 모두 112위를 봉안하고서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석전을 올 렸다. 지방에는 고을마다 모두 330여의 향교가 있어 중앙의 성균관과 마 찬가지로 매년 두 차례씩 석전을 올렸다. 지금도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남한에 있는 231개소)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 음력 8월 상정일에 석전 을 봉행하고 있다.4 4 [네이버 지식백과] 석전 [釋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ÆNTRY.NHN?DOCID=57 4807 &CID = 46649&CA TEGORYID = 46649 (2018. l. 7) 356 I 예악의 고장 합선의 제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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