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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홉품짧 <노봉사 정면 모습(우1) 노봉사 안 신위를 모신 모습(아래) ) 사당은 사대부 집안에서 중요한 건물로 왕실의 종묘(宗關)와 구별하여 가묘(家懶)라고도 불렸다. 사당은 고려 말 주자학의 보급과 함께 전래되 었지만, 일반화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일이었다. 유교의 국교화와 함께 사당 건립이 권장되었으며 여염집에서는 할 수 없는 화려한 단청도 사당 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가산리의 사당에도 기본 오방색인 청, 적, 백, 흑, 황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단청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화려한 채 색은 조상의 위엄을 과시할 뿐만이 아니라 벌레의 침식과 방습 효과가 있 어 사당이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는 실용적인 역할도 겸하였다. 사당 옆으 228 I 예악의 고장 합선의 제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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