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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포은의 충절과 신의를 이어나가기 위해 힘썼다. 만년에 관직을 그만두 고 밀양 부북면 삼포리에서 합천군 대병면 성리(송지촌)으로 옮겨왔다. 졸 당 선생은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으로는 성천이 흐르고 송지촌 앞들 가운데 독산에 속산정을 세우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양성했 다. 졸당 선생은 1439년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고 합천군 용주면 봉기리 미금동 유자원에 예장되었다. 묘각은 봉기리동네 중앙에 중건하여 후손들 의 재계와 재숙소로 하고 있으며 산청군 신안면 진태부락 신계서원에 매년 음력 3월 중정(中T)에 향사한다. 밀양 박씨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 졸당 선생의 충절과 덕망을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오고 있다. • 분정 묘제는 매년 음력 10월 5일에 열리며 재실인 봉양재에서 준비된다. 내 의문(來廢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이 가꾸어 진 마당 뒤로 팔작지붕의 봉양재가 보인다. 재실은 5칸 크기이며 오른쪽 에는 3칸짜리 맞배지붕을 한 추사당(追思堂)과 왼쪽에도 3칸짜리 정화당 (情話堂)이 보인다. 봉양재와 추사당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시제 준비가 〈봉양재〉 208 I 예악의 고장 합선의 제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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