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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주 김씨(慶州金.Et) 경주 김씨는 신라의 김알지(金關智)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삼국사 기에 의하면 김알지는 신라 제4대왕 석탈해 9년 서기 65년 경주 계럼에 서 소나무에 걸려 있던 금괴 에서 나왔다고 하여 탈해왕이 김(金)이라고 성씨 를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김해 김씨계와 더불어 김씨의 2대 주류를 이루는 성씨로 대보공(大輔公) 알지계(關智系) 가운데서도 대종을 이 루 는 경주 김씨(慶州金民)는 분파와 지파가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매우 많 다. 대표적인 분파로는 영분공파(永췄公派) , 대안군파(大安君派) , 은열공 파(股說公派) , 태사공파(太師公派) ,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 장군 공파(將軍公派)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 영분공파의 영분공 명종(嗚鐘)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 왕자라고 전한다. 이 영분공파가 다시 수은공파(樹隱 公派), 시어사공파(待倒史公派) , 두계공파(柱홉公派) , 참찬공파(參贊公 派), 월성부원군파(月城府院君派),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등 14개 로 분파된다. 백역 문중에서 모시는 입향조는 수은공(樹隱公)의 8세손 김 용(金龍)이다. 합천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많은 의병 들이 났던 곳이 다. 당시 대표적 의병 중 한 사람이 바로 김용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 어나자 김용은 부인 현풍 곽씨와 아들 명철을 진주에서 합천군 쌍백면 백 역 마을로 급히 피난시켰다. 김용은 윤탁장군 휘하에 합류하여 여러 전투 에서 승전보를 울렸지만 1593년 진주성 이 함락하면서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후손이 이곳 합천 백역 마을에서 씨족을 이어가게 되었으며, 이후로 425년 동안 경주 김씨 집성촌을 일구어 왔다. 입향조의 정착 유래 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백역 마을은 천혜의 요새 형태를 갖추고 있어, 백 역천이 흘러 나가는 백역소류지를 거쳐야만 백역 마을로 들어올 수 있다. 1부 제의례 I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