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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30일 금요일 10 (제143호) 종합 춘천박씨선기공종친회시향이지난10일봉행된가운데참례하는성손이매년증가하고있다.이는전체종원의대다수가참여한것 으로집행부의정책에믿음과신뢰를보내면서타종중의선망의대상이되고있다. 춘천박씨선기공종친회(회장: 21세손 박상광)는 춘천박씨紀元 792년(2018 년) 11월10일(음10월3일) 강원도 춘천 시 퇴계동 우미산 선산에 있는 사당 崇 敬祠에서 130여명의 종원이 참석한 가 운데 추향시제를 봉행하고 정기총회를 성대하게개최하였다. 시제는 墓祭로서 조상님의 묘소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으로 이전에는 음력 1 0월3일부터 10월7일까지 5일 동안 직접 묘소를 찾아 묘제를 지냈으나 현실적으 로 23기 묘소를 일일이 묘제로 지내는 것은 곤란하여 2012년부터 조상님 62위 의 위패를 모두 사당(숭경사)에 봉안하 고 음력 10월3일 하루에 시제를 지내고 있다. 일부 종원들은 시제일을 휴일로 정하 여 봉행하자고 주장하지만 집행부에서 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시제일을 변경 하는 것은 추원보본(追遠報本:조상님 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며 은혜를 갚음)의 정 신에 어긋난다고 판단하 여 그대로 유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부터 손 자까지 시제에 참여하는 종원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어 어느 종중시제보다 자랑 스럽다. 핵가족화로 가족이 해체되고 충효정 신과 조상음덕을 잊게 하는 풍토 속에 서 시향제마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려 운 현실을 생각할 때 춘천박씨선기공종 친회의앞날은매우밝다. 상광회장은 시제를 지낸 후에 열린 정기총회에서 22세손 민근,종환,경철, 민호,인철 종친에게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부부은수저세트를 경로기념품 으로 전달하고 후손 육영사업으로 대학 생 5명에게 장학금 5백만원을 전달하였 으며 5회 이상 연속으로 시제에 참석한 20세손 정모, 훈모, 23세손 제철종친에 게1인당격려금1백만원을전달했다. 종친회는 올해까지 88명에게 장학금 을 지급하였고 44명에게 경로기념품으 로 은수저부부세트를 , 50명의 종원에 게 격려금 5천만원을 지급하였으며 사 후에 편히 쉴 수 있는 종중묘역을 마련 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챙기는 종친회 로발전하고있다. 20여년 전에는 춘천시의 변두리로 인 식된 지역에 위치해 있던 선산 3만평과 위토 4천여평을 다른 종친회처럼 개발 용지로 헐값에 매각하지 않고 완강하게 지키면서 자력으로 개발하여 1998년 공 시지가로 18억원이던 종재는 20년이 지 난 지금 118억원으로 평가되어 100억원 이 평가증가 하였고 토지만 소유하던 종 친회가 상가건물 6동을 소유하고 임대 사업자로 변신하여 연간수입액이 3억원 을 넘 고 있 다 . 이 처 럼 기 적 처 럼 부 흥 한 것은 상광회장이 지난 10년 동안 회장직 을 맡아오면서 임원들과 일치단결하고 화합하여 이룬 성과이다. 이에 대하여 종친회원들은 종중을 자랑스럽게 여기 면서 더욱 종친회를 신뢰하고 있다. 올 해는 추가로 선산 3천평을 대지로 개발 하여임대사업을확장하고있다. 춘천박씨는 강원도 토호성씨 50여 중 수부 도시 춘천을 관향으로 하는 유일한 씨족으로 혁거세 시조님의 29세손이신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아홉 왕자 중 일 곱째이신 강남대군(諱 彦智)의 11세손 문의공(諱恒:1227 ~1281)의 후손으로 790년 연면히 대를 이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최고의 성현이신 퇴계 이황 선생 의 어머니가 춘천박씨인 것을 춘천인들 은자랑으로생각하고있다. 상광종친회장은 총회인사말에서 “앞 으로 지금보다 더 화합하고 자부심 넘 치는 종친회가 되도록 종중발전을 위하 여 헌신할 것을 부탁드린다.”는 인사말 을남겼다. (춘천박씨명예기자22세손박민군) 춘천박씨 선기공종친회 시향봉 행 및 정기총회 성료 집행부투명한운영종원들무한한신뢰보내 부동산임대소득꾸준히증가종원복지우선 조선초 사헌부 감찰을 거쳐 진해직 산 감부를 지냈던 참의공(휘 풂)의 시 향이 지난 8일(음10.1)대전시 도마동 영모재에서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우천으로 인해 묘소에 서 성묘후 영모재에신위(神位)를 모 시고 경석(敬錫) 대종회 총무의 집례 로 팔석(八錫)전 회장의 초헌례에 이 어 희조(熙助),창수(昌洙)현종의 아 헌과 종헌으로 거행되었으며, 건태 (建太)축관이독축하였다. 참의공 휘 진( 풂 )은 관조 휘 영(英)의 9세(世)로 개성소윤을 역임하고 사복시 정에 증직된 휘 광리(光理)와 합천이씨 (陜川李氏)의아들삼형제중둘째로136 6년(공민왕丙午)에태어났다. 진사(進士)가 되어 나라가 어지러짐 을 알고 공명의 뜻을 버리고 동생 소(蘇, 판서공)와 함께 호서 덕진현 유성리에 은거(隱居)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 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 조선조에 이르러사헌부감찰에제수되고,이어진 해·직산감무가되어많은치적을남기고 1422년(세종4,壬寅)년에하세하니향년 57세로 손자 형무(衡武)의 귀(貴)로 인 하여병조참의(兵曹參議)에추증되었으 며, 본리(本里) 도솔봉(兜率峯) 아래 신 좌원(辛坐原)에 예장(禮葬)되고, 참의 공파(參議公派)의문호를열었다. 부인 보안임씨(保安林氏)와의 사 이에 아들 넷을 두었으니 효함(孝誠) 충함(忠誠) 제함(悌誠) 신함(信誠) 으로문중은크게번성하였다. 장남 강릉공 휘 효함(孝誠)의 호는 청 간재(廳澗齋)로 성품이 청렴 강직하여 처음 근위병(近衛兵)으로 명성을 날렸 고, 해풍 고을을 관장함에 정사를 모두 으뜸으로펼치고,녹봉(祿俸)외에는취 하지 않으니 청백함이 명성을 떨쳤다. 특히세종 경술년(1430)가을 보령에해 구(海寇)가 침입하여 걱정거리임에도 적임자가 없었으나 청백함으로 선발되 어부임즉시순찰사최윤덕과감사박안 신으로 더불어 함 께 성 동쪽 일리 (一里) 지점 당산 (唐山) 남쪽을 살 펴 면밀한 계획으 로 몇 달 되지 않 아 축성을 마치니 백성이 별로 힘들 이지 않고 도적이 자취를 감췄다.얼 마 되지 않아 첨추 (僉樞)가 되었고 또 얼마 후 나아가서 강 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가되었 다.아들 원직(原直)과 원창(原昌)을 두 었으며,차남원창은우리나라족보사상 처음으로 수보한 성화보를 조선 성종 5 년(1474) 수보하였으며, 성화보는 대전 시유형문화재제46호로지정되었다. 강릉공 묘소 앞에 세워진 신도비는 조선전기의대표적인지식인으로45년 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모셨으며 신흥왕조의 기 틀을 잡고 문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 여했던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지었다.비의전면 대자는 ‘有名朝鮮嘉 善大夫 行 江陵都護府使 贈 吏曹參判 忠州朴公孝咸神道碑銘幷字’라고 새겨 져 있으며 대전시 비지정문화재로 등 록되어 있으며 충주호 둘레길에 자리 하고있어뭇사람들의발길 을잡는다. 강릉공과두아들의시향은지난9일우 천으로 인해 영모재에서 봉행되었으며 제관은 초헌관 우천(愚天), 아헌관 성근 (性根),종헌관 기원(基源),집례 철기(鐵 基),축관우선(愚善)현종이각각소임을 맡아차분하고엄숙하게봉행되었다. 한편 참의공파종중(회장 선복)은 201 8년도 정기총회를 참의공 제례후 개최 하고 감사보고, 종무보고, 결산보고를 원안대로처리한가운데2018년주요사 업은 △참의공 산소 제절둘레석과 입구 계단및단소정비△선조님이배향된옥 병서원외 9곳 향사 참례 △장학생 22명 지급 △청원공장및부지매수(25억)·임 대및소방안전점검등으로특히부동산 매도(편입보상)로 인한 양도소득세를 전액 환급받아 종재의 손실을 막는 등 집행부의헌신적인노력이엿보인다. 선복 회장은 총회에 앞서 인사말을 통 해 우리 선조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 지킴이에 앞장서고, 효행을 자랑으로 삼 아 오셨으나 오늘날 어려운 시국을 보면 다시한번 ‘가전충효 세수돈목’의 가훈을 되새겨 본다며 집행부에서 활동한 일들 이다소미숙하거나부족한점있으면지 도편달 해주시고, 긍정적인 면은 격려해 주시면앞으로더노력하는집행부가 되 도록 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충주박씨참의공·강릉공 시향 우천(雨天)으로영모재에서봉행 참의공파 종중 정기총회 성료 충주박씨참의공시향이지난8일우천으로인해영모재에서봉행된가운데건태축관이독축하고있다.이날제향에는참의공의아 우판서공종 중의종원과본손등100여명이참례하였다. 영모재 전경- 영모재의 시원(始原)은 영모암(永慕菴)·도동서당(道洞書堂)이다. 참 의공이 하세 하자아들들이아버지를흠모하는마음으로암자를지었으니600년유지이다. 강릉공신도비. 평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 도하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생 활을 몸에 익히고, 죽음 앞에서도 의 리를 저버리지 않았던 사육신의 충절 을 기리기 위한 시향이 지난 4일 일요 일 오전 10시 대구경북 지역 유림들 과 후손등 10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엄숙봉행되었다. 육신사(六臣祠)는 조선 세조때 단 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응 부,유성원의위패를모신사당이다. 처음에는 충정공 취금헌 선생만이 후손에 의해서 배향되어 오다가 선생 의 현손인 계창공이 선생의 제삿날에 여섯 어른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 성거리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난 그는 깜짝 놀라서 다시 다섯 분의 제물도 함께 차려 제사를 지냈다. 그 후 부 터 낙 빈 사 를 세 워 사 육 신 을 함 께 모셔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 고종3년 (1866)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 로 낙빈서원과 함께 훼철되었다. 그 후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다 시사육신을이곳에봉안하게되었다. 1974년과 1975년 사이에 충효 위인 유적 정화사업에 따라 정면 5칸, 다포 식 겹처마 팔짝지붕의 육신사를 건립 하게 되었다.그리고 1981년에는 외삼 문(外三門), 삼충각, 숭절당 , 관리사, 담장등을갖추었다. 최근 각급 교육청마다 인성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선가운데 육신사를 배 경으로 한 대구 경북지역의 학생들이 충의정신 인성체험에 참가하고 일반 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전달할 장소 로 꼽 히 고 있 다 . 단종절신사육신의충절기려, 육신사 시향(時享) 의천 과 은 산(宜川·殷山)의 군 사를 역임하고 손자 육봉공(휘 우)이 성균 관 대사성, 병조, 이조참의 한성부좌윤 겸동지춘추관사를역임하고청백리에 녹선 됨으로 호조 참의에 증직되었고, 증손 사암공(휘 순)이 영의정에 올라 이조판서에가증(加贈)된충주박씨판 서공휘소(蘇)와그의아드님인흥(仁 興),례흥(禮興),신흥(信興)등사부자 (四父子)의 시향이 지난 9일 대전시 문 지동의영사암에서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전날부터 내린 비로인 해 묘소에서 성묘 후 판서공의 분암 (墳菴) 영사암(永思庵)에서 열근 총 무의 집례로 희조 회장의 초헌에 이 어 경석, 창규 현종 순으로 헌작하고 희영 축관의 독축으로 거행되었으며, 진설 호근, 사준 강식, 좌집사 평근, 우집사 희만 현종이 각각 소임을 맡 았다. 판서공 제향후에는 아드님 세분의 제향이 이어졌으며, 제관으로는 초헌 관 응수, 아헌관 원식, 종헌관 창근, 집례열근,축관희영현종이다. 충주박씨 판서공은 고려망국과 조 선건국의 격동기를 당하여 형 참의공 (휘 진)과 함께대대로세거하던송도 (松都)를 떠나 충청도 공주로 내려와 새로운 삶터를 잡고, 이후 회덕에 다 시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이후 넷째 아들인 지흥(智興, 1411~1489)이 수 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 위 를 찬 탈 한 것 에 격 분 하 여 살 곳 을 찾 아 남 으 로 내 려 와 현 광 주 봉 황 산 (鳳凰山) 아래에 세거지를 정함으로 서 후손들이 대전과 전라도에 산재하 면서 큰 집성촌을 이룬다. 충주박씨의 가문 의 우 애 는 남 다 르 다 참의공과 판서 공이 아들들의 이 름을 충효와 사람 이 살아가면서 지 켜야할 다섯가지의 도리를 이름 앞에 넣어 작명하고 가훈으로 ‘가전충효 세수돈목’으로 하였듯 600년이 지난 지금도이를지키고있는것이다. 이날 제례에도 큰댁인 참의공 종중 의 선복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이 대거 참례하였고, 오는 22~23일 봉행 되는 찬성공 후예의 향사에는 판서공 의 차자 예흥의 후손들이 함께하고 있어 아름다운 동행으로 타 종중의 귀감이될듯하다. 충주박씨 판서공파 시향 봉행 판서공과 아드님 인흥(仁興), 예흥(禮興),신흥(信興) 등 사 부자(四父子) 영사암에서 봉행 판서공시향제관-왼쪽부터희조,경석,창규,희영,열근順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