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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7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과정에서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서정인徐正寅 등은 시국에 대해 이 야기하다가,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군이 승승장구하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일제 군인으로 끌려가기 전에 방책을 마련하자는 결의를 하였다. 개학 후 학생들은 본격적 으로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았다. 이 무렵 이들과는 달리 황병기 黃炳基‧이갑용李甲龍‧장병하張炳夏 등은 이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국내로 방송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고 예상 하였다. 이들은 청년학생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통 감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아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였다. 두 부류의 학생들은 동지를 규합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비밀결사를 조직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1944년 10월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고 후방을 교란하여 연합군의 상륙을 유리하게 하고,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는 내용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였다.55) 이 단은 조직 부서로 참모부‧연락부‧교화부‧신풍부‧특공부를 두었 으며, 이후 의료부를 신설하였다. 1944년 말까지 안동농림학교 학 생 외에 일본대학에 다니던 김복한金福漢, 경주중학의 정현모鄭賢模 ‧신두수申杜洙 등도 가입하여 단원은 50여 명에 이르렀다. 또한 이 단체에 안동의 지도층 인사들도 참여하여 이상룡의 손자이면서 55) 신승훈, 「해방직전(1943~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í��안동사 학��12, 안동사학회, 2007, 163-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