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page


167page

이동흠 선생은 1918년 4월 2일 경북 봉화군의 부호 이정필에게 군자금으로 천원을 헌납하라는 광복회 명의의 통고문을 발송하였으나, 이와 관련하여 면장 이명호와 함께 일경에 피체되어 1918년 1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그는 1925년 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경북유림단에 참가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다. 경북유림단은 중국 내몽고 지방의 미간지 및 황무지 20만정보를 매입하여 남북만주의 동포들로 하여금 개간토록 한 후 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할 것을 계획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으로 20만원의 군자금을 모금코자 하였다. 이동흠은 정수기를 통하여 유림단의 이러한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뜻을 같이하여 군자금 모금에 힘을 쏟았다. 그는 1926년 1월 경북 달성·영양 등지에서 최해윤·이현병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던 중 1926년 5월 10일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1927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