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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풍운 속에 간흉의 무리 국권을 잡아 왜이와 결탁하여 주권 팔고 국가민족의 존망을 외면하던 즈음 의인열사 초야에서 분발하여 국난 건지신 의로운 님들 속에 고종21년 갑신 4월 18일 청주 가는다리에서 태어난 청암 한봉수 선생이 계시다. 때에 나라 왜의 잠식에 말려들어 고종 을미로 융희 경술에 이르는 동안 진신선비의 창의에 이어 온 겨레의 의병운동으로 번져 성대 자못 떨치었으되 정미 칠월 밀사의 일 빌미되어 고종의 양위 팔월의 군대해산 등 숱한 억울과 온갖 모진 일 차마 어느 역사에의 찾으리료. 가는다리 여기는 민족의 얼이 깃들고 피가 끓던 곳 손의암 의기 가꾸시고 공이 의거의 횃불 드니 정미년 공이 약관 이십사세로 그 가을 청주에서 의병 이르켜 진천 문백에서 왜헌병 대위 모의 도륙을 시초로 괴산 유목리 팔월 십육일 미원 십이일 낭성가래울에서 왜병 무찌르며 보은 의장 석성국은 신산 도리던 참모장이요 수름재 이양구 최상관이라. 한편 군기 제공을 꾀하다 순국한 배창근 있으며 김운로 신황 맹영준 방기학 한춘 등 여러 의장으로 손 잡더니 무신 정월 초정 됫재에서 목 보아 강원도로부터 수송하는 대금호위대를 기습 그 수송대장 소위외 삼명을 사살 구살 삼년분 칠십칠만원과 총기를 노획하여 군자삼고 시월엔 고향가는 다리에서 수십의 왜헌병에 피습되자 날랜공은 덤비는 적을 십이명 무찌르고 삼명을 중상시키며 총기 탄환을 앗고 옥화대에서는 단신으로 왜적 팔명과 마주쳐 이명 죽이고 그 나마를 물리치며 문의 남성리싸움 또한 이기고 기유 정월 청천에서 왜헌병 십이명의 내습있자 이를 섬멸 장 단총 탄환등을 노획 휘하 수십명과 산길로 오다가 팔명의 적을 전멸시켰다. 이렇듯 싸우면 이기고 치면 앗아 호서 일경에 용명 떨치고 이어 전의 목천 평택 여주 횡성 등 여러곳에서 분전 헌병대요 병참이요 창고요 십여둔대를 쳐 칠십여적을 무찌르고 푸짐한 무기 탄약을 노획 그해의 문경전투에서는 수백 대적과 맞싸워 사십여명의 강력부대를 무찌르고 잔적을 몰아내니 이가 의전 사십여회의 마지막 싸움이였다. 공의 군기 엄하여 제승을 기하고 오직 의로써 하더니 대세의 불리로 융희 기유년 섣달 망명길의 찰나 남대문역에서 잡히어 청주옥에 나려 사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옥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