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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거행하였으니 서기는 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 이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동시이기하고 부단이계하여 약 백여일 동안 이구동성으로 터저나온 대한독립만세라는 온 국민의 함성이 팔역에 울려 퍼지니 당시 우리 고장 오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의거에 참여한 지역의 지사 의인이 매우 많았지만 왜도의 의적말살 공작으로 후세에 전하지 못한 점 불소하니 애석한 일이다. 오늘날 오산시 민족운동사에 기재된 만세운동 주모자 명단에는 팔의사의 성명만이 황황하게 기록되어 있어 뒷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모두 건국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 면모와 내용을 살펴보면 의사 김경도는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농민으로 일년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정규환은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농민으로 일년의 형을 받았고 의사 김용준은 수원군 성호면 금암리에 거주하는 삼십팔세 농민으로 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안락순은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거주하는 삼십팔세 농민으로 역시 육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유진홍은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거주하는 사십사세 농민으로 징역 육월에 집행유예 이년을 받았고 의사 공칠보는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거주하는 삼십육세 농민으로 태형 구십대를 받았고 의사 이성구는 수원군 일형면 조원리에 거주하는 이십오세 농민으로 일년 팔개월의 형을 받았고 의사 이규선은 진위면 봉남리에 거주하는 이십오세 농민으로 역시 일년 팔개월의 형을 받았으니 비록 형량의 경중은 있으나 팔의사의 위국충심과 보국의지만은 대소의 차가 있었겠는가? 혹 독립만세의 장거가 왜정하게 있었던 한민족의 일시적으로 폭발한 항거지사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 당당한 민족정기와 단단한 애국정신은 단군 개국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만년 동안 조차전패의 사이에도 간단 없이 우리 한민족의 심중에 면면히 간직되었던 것으로 비록 일거에 광복지영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이 만세운동을 효시로 천신만고 투쟁 끝에 마침내 나라의 광복을 성취하고 일제를 퇴치하여 삼십육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팔의사의 숭고한 위국충심과 투철한 보국의지로 얻은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 짐은 곧 우리 한민족의 불멸하는 일월이고 그 지는 곧 우리 한국가의 장존하는 산하이다. 이같이 거룩한 의적을 후인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뜻에 우리 지역민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비를 새겨 거인래객의 이목이 많은 이곳 오산 역전 광장에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