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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1936 창립 초기부터 우리말인 한글을 통해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려 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해 〈큰사전〉의 편찬을 시도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의 발기인 108명 모두가 민족주의 사상을 지녔다고 판단한 일제는 이들을 강제해산하기 위한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회원들은 사전출판을 서둘러 1942년 4월 그 일부를 대동출판사에 넘겨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제는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함흥학생사건을 꾸몄다.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태극기를 그리며 '우리나라 국기'라고 속삭이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어 취조받게 되었은데, 취조 결과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을 맡고 있는 정태진이 관련되었음을 알았다. 같은 해 9월 5일 정태진이 검거되어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 단체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거짓자백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0월 1일 핵심인물 11명이 검거되어 왜 잡혀왔는지 영문도 모른채 하루밤을 지낸 후 다음날 저녁 열차에 태워져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압송되어 4개월간 모진 고문을 받았다. 흥원경찰서에서는 이 사건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재판에 부치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이들을 시작으로 탄압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리하여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어 야만적인 고문을 당하게 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강제로 해산당했다가 해방 후 조직을 정비한 뒤 1949년 9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