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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 항일운동 1929.11.3 일제는 조선인들을 우민화하기 위해 고등교육 제한, 직업교육과 일본어, 일본사 교육 등을 실시하였고, 조선 학생들을 억압하였다. 결국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교육자들의 억압과 무시 그리고 우민화정책을 당하면서 항일의식을 갖게 되며 비밀 학생조직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속에서 1929년 10월 31일 나주역에 도착한 광주발 통학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중학생들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인 박기옥, 암성금자, 이광춘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는 분노하여 항의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를 본 일본 경찰들이 일본인 학생 편을 들고, 광주고보생들은 차별에 대해 집단항의하였다. 1929년 11월 3일은 일본에게는 메이지 천황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치절이었지만, 조선인들에게는 개천절이었다. 한국인의 시조를 기념하는 날에 일본 천황의 생일을 일본 국기인 '기미가요'를 불러서 축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인 학생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일본인 학생들과의 출동사건을 불공정하게 보도한 광주일보에 몰려들어가서 항의하였다. 그리하여 장재성의 주도로 학생들은 광주농고 학생들과 함께 광주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용감히 일제를 물리치자는 내용의 행진가를 부르는 가두시위를 하였으며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항일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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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 항일운동 1929.11.3 일제는 조선인들을 우민화하기 위해 고등교육 제한, 직업교육과 일본어, 일본사 교육 등을 실시하였고, 조선 학생들을 억압하였다. 결국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교육자들의 억압과 무시 그리고 우민화정책을 당하면서 항일의식을 갖게 되며 비밀 학생조직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지역적 분위기 속에서 1929년 10월 31일 나주역에 도착한 광주발 통학열차에서 내린 일본인 중학생들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인 박기옥, 암성금자, 이광춘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는 분노하여 항의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를 본 일본 경찰들이 일본인 학생 편을 들고, 광주고보생들은 차별에 대해 집단항의하였다. 1929년 11월 3일은 일본에게는 메이지 천황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치절이었지만, 조선인들에게는 개천절이었다. 한국인의 시조를 기념하는 날에 일본 천황의 생일을 일본 국기인 '기미가요'를 불러서 축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인 학생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일본인 학생들과의 출동사건을 불공정하게 보도한 광주일보에 몰려들어가서 항의하였다. 그리하여 장재성의 주도로 학생들은 광주농고 학생들과 함께 광주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용감히 일제를 물리치자는 내용의 행진가를 부르는 가두시위를 하였으며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항일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