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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는 1859년 대한민국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매 열사는 결연히 일어나 주권 회복 운동에 앞장서던 중 고종황제로부터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을사 보호조약이 우리의 뜻이 아님을 밝히라는 밀령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장도에 올랐다. 헤이그에서 평화회의가 열리던날 열사 등은 의장을 방문하고 황제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달하였으나 일본대표의 방해로 회의참석자격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열사는 죽음으로써 한민족의 자주독립의 염원과 기개를 온세계에 떨쳤으나 때는 1907년 7월 14일이었다. 열사의 유해는 56년 동안 이 자리에 묻혀 있다가 1963년 열사가 그렇게도 그리던 자주독립의 조국 대한민국의 품에 돌아가 서울북쪽 슈유리 묘소에 안장되고 1972년 네델란드 정부의 협조로 대한민국 정부가 이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