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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기 1985.6.1 생 ~ 1941.7.5 졸 그의 일대기는 민족적 수난과 형극의 굴레속에서 굴하지 않고 하늘나라를 선교하는 일이었다. 1917년 평양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18년 성진욱정교회에 부임 업억 일주 명천 삼수 갑산 혜산 풍기 자호 용대 단천 이원 등지에 교회를 세우고 1925년 함중노회를 창립, 작고하기까지 노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민족의 미래는 교육이 좌우하리라는 확신에서 캐나다 선교사 구례선 박사와 함께 교육사업을 이르킨다. 성진 보신남학교 성진 보신여학교를 함께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다년간 맡고 있었다. 1919.3.1 독립만세운동 당시 동월 11. 성진. 학성 등지 일대에서 5~6천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스며, 함흥 서울에서 재판을 받고 주모자로 동지들 14명과 함께 옥고를 치르시었다. 당시 상황은 사건현장 목격자 구례선 선교사의 전도수기와 운동참가자 배만수 박사의 회고록, 그리고 한국독립운동사 제2권 4장 5절 성률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93.3.1절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동년 6.1국가유공자증이 추서되었다. 평생 기도속에서 절대자와의 대화를 통해 국권의 회복과 민족의 해방과 하늘나라의 실현을 열열히 간구하는 선생이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그 신앙과 실천은 문중의 정신적 유산으로 응집되어 갔스며, 오늘도 그리고 대대로 후손에게도 영원히 이어져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