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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오래전부터 찾으려고 했지만 전혀 힌트가 없었고, 구청까지 문의했지만 모른다고 했었던 강학린 목사 추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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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린은 함북 성진(城津) 사람이다. 1919년 3월 7일 당시 성진군 성진읍(城津邑) 욱정기독교회(旭町基督敎會) 목사로 재직하던 중 김상필(金相弼)·강희원(康禧元) 등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인근 각처에 연락을 취하는 등 준비를 갖춘 후 3월 10일 캐나다 선교사 구예선(具禮善)이 운영하는 제동병원(濟東病院) 광장에 모인 5천여 명의 군중들 앞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궐기사를 하여 군중들의 기세를 높였다. 그가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도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벌여 일본인 상가, 경찰서, 우체국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경이 무력으로 이들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군중의 분노를 사서 투석전이 벌어졌다. 이날의 시위로 인하여 그는 안성윤(安聖允) 등과 함께 주동인물로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소위 소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청진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불복 공소하여 같은 해 9월 2일 경성복심법원과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1년 4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