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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병( - ~ 1946.1.19) 학병동맹은 일제말 학병으로 전쟁에 끌려 나갔다가 광복 후 돌아온 학생들로 조직된 사회주의 경향의 단체였다.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발표하자 남한 사회는 반탁의 우파와 찬탁의 좌파로 갈려 격렬하게 대립했다. 1946년 1월 18일 반탁전국학생연맹과 학병동맹원 간에 충돌이 일어나 양쪽에서 4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학병동맹이 총기를 소지했다는 정보에 경찰은 다음날 1월 19일 새벽 삼청동의 학병동맹본부를 포위하여 학병동맹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피살되었다. 그 때 희생된 학병동맹원 3명은 이곳에 묻혔고 비석 뒷면에는 단지 '조국을 위해 죽다'라고 새겨졌다. 김성익은 학병동맹의 부위원장이었고 박진동은 경성제대 재학생으로 학병동맹의 군무국장이었다. 장례식 소식을 보도한 신문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옆에 있었다. '좌와 우는 참회하라. 난국에 비분, 비정치인사 일어나다' 이 묘소는 박진동의 유족이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