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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박용만(1881~1928) 독립운동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108번지 출생 박용만 선생은 칼을 찬 사상가로 일제 강점기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넘나들며 조국의 자주적인 독립을 위하여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며 구국의 일생을 살았다. 미주의 안창호 이승만과 더불어 3대 인물로 군사적 독립운동을 중요시 했던 박용만 장군은 2번의 출옥 끝에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네브라스카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하고 1908년 미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독립군 양성 기관인 '한인소년병학교'를 1914년 하와이에서는 군사조직 '대조선국민군단'과 '국민군단사관학교'를 창설하여 해외 각지에 독립의 희망과 의지를 높여냈다. 러시아에서도 1919년에 무장독립 투쟁을 위한 블라디보스톡의 대조선국민군 결성하고, 1921년 북경에서는 국내, 서간도, 북간도, 하와이, 러시아 지역의 독립 투쟁을 아우르는 군사통일회의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의 힘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박용만 선생은 임시정부가 탄생할 수 있도록 무형정부론을 앞서 주창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신한민보〉 호놀룰루의 〈국민보〉 북경의 〈대동〉 친진의 〈혁신공보〉등의 주필을 맡아 우리 민족이 나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곳 오른쪽 어디엔가 박용만 선생의 생가터가 있으며 강원애국단의 중심이었던 이봉하 선생이 단장으로 참여한 철원애국단의 동지들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관전리, 중리, 월하리는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의 성지로 주민들이 잊지 말고 기념하기를 바래며 이 비를 세우다. 2016년 1월 22일 철원독립운동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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