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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애국단(철원애국단) 결성지 강원도 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철원의 만세시위는 시위자가 진압된 후에도 지역사회의 본격적인 독립투쟁 활동으로 이어졌다. 민족교육의 산실인 봉명학교 설립자 이봉하 선생은 곧이어 비밀 독립투쟁단체인 철원애국단을 결성하여 군원군단장고과 강원도단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애국단의 활동내용은 상해임시정부지원 및 임시정부의 각종문서 반포, 독립운동의 선전, 일본 관직에 있는 한국인에 대한 퇴직 설득, 임시정부 독립자금 모집및 전당등이었다. 철원애국단과 강원애국단은 신현우선생에 의해 설립된 대한독립애국단의 강원도 조직이다. 3.1운동 이후 국내에는 많은 비밀 무장투쟁 조직이 생겼는데 대한독립애국단은 그 규모로 보나 활동면에서 월등한 입지를 차지한다. 애국단은 서울에 본부를 두었고 점차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지로 조직의 규모를 확대해 나갔다. 철원군단은 김상덕의 소개로 대한독립애국단의 존재를 알게 된 이봉하, 박연서, 강래려, 김완호, 이용우, 박건병, 오세덕 등이 참여하여 1919년 8월 11일 철원의 도피안사에서 결성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봉하선생을 철원군단장으로 하고 서무과장에 강대려, 재무과장에 김완호, 통신과장에 박연서, 학무과장에 박건병, 외교부원으로 이용우, 김철회 오세덕을 각각 선출했다. 그 후 서울의 대한독립애국단 본부는 철원군단을 강원도단으로 승격시켰다. 이에 따라 철원애국단은 강원도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기독교 목사, 승려, 유학자 등 각층에서 가담하였다. 전국에 뿌리내린 대한독립애국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 역활을 수행하였다. 연통제란 상해 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조직으로 애국단 강원도단은 임시정부 강원도청인 셈이다. 강원도단에는 철원군단을 비롯, 강릉군단, 평창군단, 단양군단을 예하로 거느리고 있었다. 독립운동의 열기가 점차 국내에서 국외로까지 확산되며 상해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부상하였고 그에 따른 지원활동을 행동지침으로 삼아 연통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강원애국단은 1919년 10월10일 철원에서 강원도단 전원이 참여하여 2차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강원애국단은 1920년 초 철원읍 월하리 거주 재력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참여와 독립자금 모금 동참을 요구하다가 이들의 밀고로 그 전모가 들어나 35명의 조직 임원이 체포되었다. 이봉하선생은 이 사건으로 징역1년을 선고받곡 오고를 치렀다. 김상덕을 비롯한 다른 임원들도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의 죄명으로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