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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배영직(裵榮直) 선생 생가지(生家址) 배영직(1882.1.3.~1926.11.2.) 선생은 이곳 계룡시 두마면 입암리 341-1번지에서 출생하셨으며, 1919년 충남 논산시 두마면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지역의 유지이자 자산가인 부친 배대식(裵大植)과 함께 농촌자력갱생운동을 펼쳐왔고 인근의 빈민들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는 등 선행을 베풀어 주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4월 1일 오후 4시경 향리인 두마면 두계(豆溪) 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날 오후 6시경 그는 일본인 순사를 뿌리치고 장터에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격동된 장꾼들이 시위대를 형성하여 다시 만세시위운동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시위군중의 수가 1,0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또한 시위대의 일부는 일제침략과 수탈의 교량 역할을 하던 철도선로의 파괴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강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그 후 1924년에도 만세시위를 하다 다시 체포되어 군산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지 3일만에 고문 여독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년 8월 일 계룡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