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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를 당하매 남만주로 솔가 망명하셨다. 남만주에서 장성한 공은 고상한 성품과 준수한 기품에 출중한 용맹과 불타는 조국애로 조맹선 단장이 영도하는 대한독립단에 가담 항일 독립 전선에서 활약하셨다. 1919에 이르러 재정부장 전덕원 지사 지휘로 윤학천과 더부러 수십명 단원을 인솔하여 국내에 잠입 평북 용천군 등지에서 지단조직과 독립군자금 조달 모금에 진심갈력하셨다. 3.1운동 출옥 지사 장관주와 연동제의 용천군 내중면감 이후관의 협조로 모금한 거액의 군자금을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대한독립단 본부에 전달 항일 독립군 양성에 크게 기여하셨다. 1920년말 추적하던 왜경 60여명과 혈전 끝에 중과부적으로 이후관 이신관 등과 피체되어 왜경의 혹독한 고문에도 굴치 않으매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는 어느 동포 출신 왜경 경시로부터 "끝까지 잘 싸우시오"라는 비밀 격려를 받고 조직과 활동 전모가 탄로되지 않은 상태로 기소되어 신의주 재판소에서 징역 2년 선고를 받아 경성감옥에서 1923년 2월 9일 만기 출옥 후에도 공은 다시 옛 동지들을 규합 만주에서 계속 조국광복운동에 헌신하셨다. 8.15 조국 광복 후 환국 향리 장승포에서 청빈을 낙도로 초지일관 변함없는 우국지정으로 유유도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