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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도중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집은 광현당이고 성장한 집은 저한이라 하였다. 11세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에 일본인 선생에 불만을 품고 자퇴하였다가 13세에 한문공부를 시작하여 매곡 성주록 선생으로부터 '매헌'이라는 아호를 받았다. 19세에 신문화 습득과 농촌부흥에 노력하여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가르치고 월진회를 조직하였ㄷ. 1930년에 일본 경찰의 탄압으로 집을 떠나 김구 선생이 이끄는 독립운동 조직인 상해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을 겸한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던져 상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여러명의 일본인 수괴를 죽이거나 부상을 입혀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 여러곳에 보여주었다. 의사는 현장에서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어 같은 해 12월 19일 일본 삼소정공뵹 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장렬히 순국하였다.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29호로 지정된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의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충의사)과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기념관, 생가인 광현당과 성장가인 저한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