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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_ 수원 그날의 함성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 91 2 . 이선경 4 ) 1 ) 10 대 소녀의 관심은 언제나 ' 조국독립 ' 1904 년 4 월 30 일 경기도 수원면 산루리 ( 현 수원시 팔달구 중동 ) 에 한 여자아이가 태어 났다 . 그 여자아이의 이름은 이선경 . 그녀는 스무살도 채 살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나야했 다 .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여린 몸을 바친 것이다 . 이선경은 집안이 수원에서 큰 부잣집이었던 덕에 일찍부터 수원 산루리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했다 .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한 이선경은 1917 년 경성여자고등보통 학교 ( 현 경기여고 ) 에 입학했다 . 10 대 소녀는 또래 친구들과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독 립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또한 이선 경은 당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2 학년이었던 임순남 , 최문순과 함께 서울로 통학하면서 선배들과 조국의 독립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이선경은 이들과 함께 항일운동의 요람이었던 수원교회의 교사로 활동했고 더불어 비밀리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3 · 1 운동이 발발하자 당시 수원 청년운동의 주요한 인물이었던 김노적 , 박선태 등과 같은 산루리 출신이었던 이선경은 김세환 밑에서 각지의 연락임무를 담당했다 , 그녀는 치 마 속에 혹은 앞가슴에 비밀문서를 넣어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대전 , 청주 , 안성 등지로 수십 차례에 걸쳐 비밀지령을 전달했다 . 김세환과 김노적 아래에서 만세운동의 행동대로 활약했던 이선경은 박선태와 더불어 독립운동 활동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다 . 3 · 1 운동 이후 이선경은 임순남 , 최문순과 함께 박선태 , 이득수를 1920 년 6 월 7 일 수원 면 서호 ( 西湖 ) 부근에서 만나 혈복단 ( 血復團 ) 을 구국민단 ( 救國民團 ) 으로 개칭하는 논의에 참여했다 . 이후 6 월 20 일 구국민단의 조직을 개편하게 됐는데 , 이에 단장 박선태 , 부단장 이 득수 , 서무부장 임순남 , 재무부장 최문순 , 교제부장 차인재 , 이선경은 구제부장을 맡았다 . 4 ) 수원인물열전 77 - 한동민 (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 2010 년 5 월 26 일 수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