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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육훈련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 ”라고 명시되어 있다 . 농업진흥청은 1962 년 농업연구와 기술보급을 목표로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개청하 였다 . 농촌진흥청에는 시험국 , 지도국 및 총무과를 , 시험국에는 연구조정과와 지역시험 과 , 지도국에는 기획과 , 농사개량과 , 생활개선과 , 사회지도과 , 기술공보과를 두었다 . 그리 고 산하 시험연구기관으로는 수련소 , 식물환경연구소 , 작물시험장 , 원예시험장 , 임업시험 장 , 잠업시험장 , 축산시험장 , 가축위생연구소 , 농공이용연구소 , 고랭지시험장 및 제주시 험장을 두었다 . 농촌진흥청은 우리 민족의 숙원이던 쌀의 자급달성을 가능하게 한 녹색혁명의 성취 , 과학영농의 실천으로 농산물의 획기적인 증산과 농업소득의 향상 등 재래방식에 의존해 오던 우리의 농업기술을 현대화 , 선진화된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 여 왔다 . 다시 말해 , 농업진흥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농업혁명의 산실이라고 할 수가 있다 . 쌀의 자급을 달성한 녹색혁명 , 신선 농산물의 연중 공급할 수 있는 백색혁명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을 국민들에게 제공해 왔다 . 과학농법이 도입되고 새마을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72 년 농업진흥청이 개발해 첫 재배를 시작 한 다수확 벼 품종 ‘통일벼’는 주곡 자급을 혁명처럼 가져왔다 . 주곡 쌀의 자급화가 이뤄짐 에 따라 벼농사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소득원 개발이 요구됐고 벼농사 분야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재배 기술이 필요해졌다 .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농업진 흥청은 벼농사와 축산 , 채소 , 과일 등을 결합한 복합영농의 개념을 1980 년대 도입하였다 . 1990 년대 농수산물 수입 개방으로 첨단 기술농업으로 , 2000 년대 들어서는 생명공학의 중 심 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 그러나 농업진흥청의 수원시대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전북에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 고자 한다 . 농업진흥청은 52 년간의 수원 청사를 정리하고 , 2014 년 7 월 전북 전북혁신도시 농업생명연구단지로 이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