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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았다 . 이 때문에 투기의 장으로 한국의 토지가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한국의 토지가 일본 에 비해 저렴하였기 때문에 낮은 가격으로 대규모의 토지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 일본인 들이 집적한 토지에서 단순 소작경영으로도 10 %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 일본인 들은 침략 초기 주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황해 · 경기도에 집중적으로 토지를 매입하였 고 , 그 가운데서도 낙동강 · 금강 · 영산강 등의 유역은 땅값이 싸고 간척하기에 용이하였 기 때문에 이런 곳을 선호하였다 . 그 밖에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유출하 기 좋은 철도주변과 개항장 일대에 집중하였다 . 한국에서 토지를 집적한 일본인들은 자 신의 토지에 농장을 설립하여 경제성이 좋은 벼농사를 통해 쌀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일본 미곡시장에 판매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 교통이 편리하고 토지가 넓고 비옥했던 수원에 일본인들이 토지를 겸병하기 시작하였 으며 , 동양척식주식회사 ( 이하 ‘동척’으로 줄임 ) 의 일본인 이민자들도 들어왔다 . 또한 토지 가 비옥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본인 농업경영자들도 많았다 . 『경기도지주명부 ( 京畿道地 主名簿 ) 』 ( 1938 ) 에 나타나는 일본인 지주와 농장이 소유한 수원의 토지는 다음과 같다 . <표> 수원지방의 일본인 농장 및 지주 (단위 : 정보) ** 韓國農村經濟硏究院 , 『農地改革時 被分配地主 및 日帝下 大地主名簿』 , 1985 에서 작성 . 소유주 논 밭 합계 소작인 수 소작료 수취 방법 논 밭 堀內順一 97 41 138 199 정조 3 할 집조 7 할 정조 10 할 笠松一藏 78 78 60 타조 10 할 坂手芳夫 201 110 311 95 정조 10 할 정조 10 할 國武合名會社 302 68 370 518 집조 10 할 정조 10 할 東山農事株式會社 857 268 1 , 125 1 , 512 집조 10 할 정조 10 할 東洋拓殖株式會社 809 381 1 , 190 2 , 117 타조 10 할 정조 10 할 朝鮮信託株式會社 154 45 199 233 집조 10 할 정조 10 할 위의 < 표 > 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수원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농장은 동산농장이 었다 . 동산농장은 대표적인 일본인 농장으로 1907 년 1 월부터 토지를 매수하기 시작하여 1909 년 말에 이르러 대체로 경지정리를 완료하였다 . 동산농장의 경영방법은 소작제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