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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것이다 . 이러한 노력이 곧 수원에 제일 처음 세워진 개신교 교회인 기독교 대한감리회 수 원종로교회의 출발점이다 . 곧이어 1901 년에는 미북감리회 서울 선교부에서 이명숙 전도사를 파송시켜서 북문 안 에 13 칸짜리 초가를 구입 개축하여 가족을 이주시켜 정착하여 수원시내에서 선교를 시 작하였다 . 그는 인접한 땅과 작은 집을 구입하여 숙소를 겸한 교회당을 이듬해인 1902 년 에 신축하였으며 , 그곳에서 남자 매일학교를 함께 시작하였다 . 곧이어 스크랜턴 대부인 (Marry F.Scranton) 이 여학교를 세워 여성교육에도 힘을 쏟게 되었으며 , 이것 현재 매향 여자중학교 ,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전신이다 .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1908 년에는 수원교회를 중심으로 ‘수원지방’이 조직되어 1912 년에는 수원지역 뿐만 아니라 제천 , 음성을 포함하는 충북지역과 여주 , 이천 등의 경 기 동부 , 그리고 남양 , 안산 등 경기 서부를 관할하는 큰 선교 지방이 되었다 . 개신교의 수 원지방의 중심이 된 수원교회는 교세확장에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 1913 년 에 미국 백각부인 (Mrs. Althera Babcocks Teither) 이 자기 모친을 위하여 기념예배당을 지 으라고 미화 150 불 ( 300 원 ) 의 기금을 기초로 중로에 함석지붕의 예배당 40 평을 건축하여 ‘수원종로교회’라 불리게 되었다 . 이때 지은 교회의 위치가 지금의 북수동자리이다 . 3 · 1 운동에 참여한 김세환을 비롯한 신도들로 인하여 종로교회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 지만 ,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1932 년에는 2 층 연와조 60 여 평의 건물로 개축하였다 . 현재 의 종로교회 모습은 1969 년 10 월에 연와조 2 층 379 평으로 개축된 것이다 . ▶ 여민각 여민동락 ( 與民同樂 ) 의 의미 , 2008 . 10 월 준공 , 용주사 범종 ( 국보 제 120 호 ) 을 모델로 제 작 , 무게 20 여 톤 , 높이 3 . 2 m, 직경 2 . 2 m ■ 팔달문동종(경기도유형문화재 제 69 호) 팔달문 동종은 고려 1080 년 ( 문종 34 ) 2 월에 개성에서 주조되어 수원부 만의사에서 사 용되다가 1687 년 ( 숙종 13 ) 3 월 만의사 대종으로 새로이 주조했다는 명문이 종의 몸통에 기록되어 있다 .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하고 난 뒤 화성행궁 앞 사거리 ( 종로 ) 에 종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