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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일시 장소 운동상황 3 월 01 일 수원면 화홍문 방화수류정 부근 김세환, 김노적 등의 지식인과 젊은 학생들의 주도로 수백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임. 서울의 3 ・ 1 운동과 더불어 최초로 시작된 만세운동 3 월 16 일 수원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이 벌어졌으며, 팔달산 서장대와 동문 안 연무대에 수백명이 모 여 만세를 부르면서 시가지 종로를 통과하던 중 군중들은 일본 경찰과 소방대, 헌병대와 충돌, 주동자가 체포되자 석방을 요구하며 철시투쟁을 벌여 체포되었던 사람들이 풀려남 3 월 21 일 동탄면 오산리 오산리 천도교인 박두병・김재천・김진성 등이 인근 마을과 기독교인들과 연락하고 이 곳저곳으로 이동하며 평화적으로 만세를 부름 3 월 23 일 수원면 수원역 부근 서호 수원역과 서호부근은 일본인과 지주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소작농 등이 중심이 되어 7 백여명이 만세운동을 일으킴 3 월 25 일 수원면 장날을 이용하여 청년학생들의 주도로 학생과 노동자 등이 만세를 부름 성호면 오산에서 보통학교 졸업생들과 천도교도들이 금융조합과 일본인, 중국인 가옥을 파괴 하며 만세를 부름 3 월 26 일 송산면 사강리 오후 5 시경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주민 1 백여명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만세를 부름 3 월 28 일 송산면 사강리 오후 2 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 및 부근에서 1 천여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순사 1 명을 처단함 3 월 29 일 수원면 김향화의 주도아래 기생 30 여명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던 중 자혜의원 앞에서 만세운 동을 벌였고, 야간에는 상인과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곳곳에서 만세를 부르면서 일본인 상점에 투석하여 창유리를 파괴함 성호면 오산리 오산장터에서 8 백여명이 만세를 부르며 우편소, 주재소, 면사무소 등을 파괴함 양감면 수백명이 평택군 청북면 율북리 주민들과 협력하여 산상에 횃불을 놓고 만세를 부른 후 각각 해산 태장면 등불과 태극기를 휘두르며 산상 횃불 시위를 전개함 3 월 30 일 안룡면 군중 수백명이 북을 치며 등불을 들고 만세를 불렀고, 산상 횃불 시위를 전개함 3 월 31 일 향남면 발안리 1 천여명의 천도교인・기독교인과 농민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면서 일본 인 가옥과 일본인 소학교를 파괴함 의왕면 고천리 고천리에서 800 명의 천도교도・기독교도・농민 등이 면사무소와 고천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펼침 4 월 01 일 반월면 반월장 6 백여명의 천도교인・기독교인・농민이 평화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임 4 월 03 일 우정면 장안면 주민들과 천도교도, 기독교도가 주동이 되어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약 2 천 5 백명의 군중이 참여함. 군중들은 우정・장안면사무소를 파괴하 고 , 화수경찰관주재소를 불태워 버렸고, 그 곳에 근무하고 있던 순사를 처단함 4 월 05 일 향남면 발안리 4 월 5 일 발안 장날 약 8 백여 군중이 다시모여 만세운동을 벌이고 주재소를 파괴함 4 월 06 일 비봉면 천도교인들과 기독교인 다수가 합세하여 만세를 부름 4 월 07 일 마도면 천도교인과 기독교인들이 연합하여 만세운동을 벌임 4 월 15 일 향남면 발안리 발안장을 이용하여 4 백여명이 만세운동을 벌임 제암리 우정・장안면의 만세운동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순사들이 처단 당하자 일제는 폭력적 탄압과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하여 제암리 교회에 무고한 주민 30 여명을 가둬놓고 불을 질러 많은 희생자들을 낸 야만적 학살사건이 발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