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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조직되어 스크랜튼 (M. F. Scranton) 부인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 1905 년 ‘주한 미감리교 한국선교회’가 조직되었는데 이는 남자 선교회였다 . 당시 수원은 제물포 지방에 속해 있 었으므로 감리사는 제물포 지방을 담당하였던 존스 목사였다 . 그가 1892 년 ~ 1903 년까지 담당하던 때인 1900 년 4 월 10 일 수원에 북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 즉 종로교회인데 , 삼일여학교는 종로교회의 ‘매일학교’로 시작된 것이다 . 종로교회 부 설학교 형태로 매일학교가 1902 년 4 월 이전에 15 명으로 남자 매일학교를 시작하였다 . 이 것이 삼일학당의 시작이었다 . 삼일여학당은 1902 년 6 월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회 스크랜 트 선교사에 의하여 3 명으로 개교하였다 . 삼일여학당은 사립학교령에 의하여 1908 년 4 월 28 일 사립삼일여학교로 학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 이때 삼일여학교 교사 김몌례의 교육 에 대한 열성은 지역사회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 김몌례는 1904 년부터 1916 년까지 13 년 간 근속한 교사로 삼일여학교 초창기를 일구었던 산증인이었다 . 삼일학교는 1909 년 고등 과 제 1 회 졸업생 20 명을 배출하였고 , 삼일여학교는 1910 년 3 월 23 일 제 1 회 졸업생으로 나 혜석 · 박충애 , 차우르다 · 홍보배 등 4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삼일여학교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은 1913 년 김세환 선생이 삼일여학교 학감으로 부임하였던 점이 다 . 김세환은 학교를 자주 비우는 밀러 교장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였다 . 삼일여학교는 1913 년 교장 밀러의 노력으로 매향동 110 번지에 근대식 건물을 짓고 이전하였다 . 1920 년 11 월 교육령의 일부 개정에 따라 삼일여학교는 1926 년 5 월 보통학교 로 인가되었다 . 이에 삼일여자보통학교는 6 년제 학교가 되었다 . 이에 대한 기념식이 5 월 21 일 진행되었고 , 새 건물 건축을 시작하였다 . 학교 앞 수원천에 다리를 주민들과 학교에 서 모금하여 새롭게 놓아 ‘삼일교’로 명명하였다 . 1930 년 당시 신입생은 40 명이었고 , 재적 생은 114 명으로 전체 학생수가 169 명이었다 . 1941 년 5 월 삼일여자보통학교에서 수원여 자매향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해방을 맞이하였다 . 지금은 남녀공학으로 매향중학교가 되어있다 . ▶ 동신교회 화홍문 아래 수원천변으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옆에 위치한 동신교회는 그리 널리 알 려져 있지 않은 교회이다 . 그럼에도 수원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