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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로 결정했다 . 이때 독도를 비밀스럽게 시마네현에 편입했다는 점에 먼저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 독 도편입을 알리는 고시는 일본의 관보가 아니라 시마네현 현보에 발표되었고 지방신문이 작게 기사를 냈지만 주목한 사람들은 일본인들 중에도 거의 없었다 . 바로 일본정부는 내 무성의 충고를 받아들여 독도침탈의 사실을 열강들이 알지 못하게 처리한 것이다 . 이후 일본은 독도뿐만이 아니라 한국전체를 삼키기 위해 열강들과 거래를 하기 시작했 다 . 1905 년 7 월 미국과 일본이 소위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을 맺고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 본이 인정하는 대신 일본에 의한 한국지배를 미국이 묵인한다는 내용에 합의를 하여 미국 을 일본 편으로 만들었다 . 그때 영국도 밀약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과 영국이 라는 당시의 강대국 둘을 일본 편으로 만든 데 성공했다 . 이어서 일본은 1905 년 9 월 러일 전쟁을 종료하기 위한 러시아와의 포츠머스 조약 체결 시 , 그 강화조약 제 2 조에 ‘러시아 는 대한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권리를 인정한다’라는 문구를 삽입하는데 성공하여 한반 도문제에는 일본의 우선권을 갖는 것을 러시아 측에 인정케 만들었다 . 일본은 프랑스와도 다르게 협상했고 청나라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했기 때문에 일본의 한국지배에 대한 발언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 이제 주요 열강들의 입을 다 막아버린 일본은 1905 년 11 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 사늑약을 마음대로 한국에 강요할 수 있었다 . 일본의 한국침략을 막는 열강들이 하나도 1905 년 1 월 28 일, 일본정부는 독도를 무명, 무국적(무주지)의 무인도로 규정, 울릉도의 이름이었던 다케시마를 독도의 이름으로 하여 시마네현에 강제편입시켰다.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자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