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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제 1 강 _ 수원, 한반도의 배꼽을 꿈꾸다 2 . 서해를 아우르는 군사 , 교통의 요지 수원 ( 水原 ) 은 말 그대로 ‘물고을’이다 . 마한 54 개국 중 가운데 수원지역은 모수국 ( 牟水 國 ) 이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역시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 삼국시대에 들 어와 수원지역을 최초로 차지한 국가는 백제였다 . 백제는 3 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4 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에 고대 국가체제를 완성하였는데 , 지금의 경기 도 지역 대부분이 당시 백제의 영토였다 . 한성백제 시대 5 부 ( 部 ) 가운데 서부 ( 西部 ) 로 비 정되고 있다 . 이 지역이 백제 때부터 서해안 지역을 관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 군사적 중심지였음을 반영한다 . 이러한 이유로 한성백제 시대의 우수한 유물들이 상당히 발굴되고 있는 현실이다 . 그러나 백제 때 지명은 알 수 없고 이후 고구려 때 지명이 역사 에 등장한다 . 즉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한강유역과 수원을 포함한 그 주변지역이 고구려 땅이 되었을 때 , 수원은 매홀 ( 買忽 ) 이라 하였다 . 매홀 역시 물골 ( 물고을 ) 을 의미하고 있다 . 수원지역은 해양교통로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삼국간의 항쟁이 매우 치열하였다 . 신라 가 한강유역을 점령하고 삼국을 통합한 이래 수원지역은 대당 무역의 중요한 루트가 되었 다 . 당항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주에서 추풍령을 넘은 당은포로 ( 唐恩浦路 ) 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 이 길은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가다가 해골물을 마신 곳이기도 하고 , 흥선대 원군이 청나라 천진으로 납치된 곳이기도 하다 . 수원은 어디나 땅을 파면 물이 나고 하천과 저수지가 많아서 수원이라고도 한다 . 그러 나 실상 이보다는 서해까지 이어진 땅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 경기만 일대를 아우 르는 해양교통로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된 이름이다 . ‘물골’ ‘물고을’ 수원의 물은 바다를 뜻하는 것이다 . 그래서 수원은 다시금 바다를 꿈꾸 는 것이다 . 지금 수원 · 화성 · 오산으로 나뉘어진 이 땅은 전통적으로 수군의 요충지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대접을 받았다 . 성식 ( 成軾 , 1542 ~ 1600 ) 이 “수원부사로 나갔는데 그때 왜인 ( 倭人 ) 들이 심상찮은 정보 가 있어 수원은 국가의 앞마당이라 하여 무변 ( 武弁 ) 과 교체하였다 .( 水原府使時倭有聲息 以國門庭之地替與武弁 ). ”는 『국조인물고 ( 國朝人物考 ) 』의 기록이 있다 . 수원은 ‘국문정지 지 ( 國門庭之地 ). ’ 즉 나라의 앞마당으로 인식되어 이를 빼앗길 수 없다 하여 무일 출신으 로 수원부사를 교체하고 있다 . 이렇게 수원이 나라의 앞마당이라는 인식은 바다를 상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