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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1933 년 여자미술학사를 세운 나혜석은 학사 설립을 알리면서 돌린 취의서에 광과 색의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 52 ) 학생 모집을 위한 광고에서 나혜석은 광과 색의 세계에 “많은 신 비와 뛰는 생명이 거기”에만 있으며 여성이 해방되어 할 일이 여성의 잠재력을 발동시켜 미술을 하는 것이라는 논리 , 즉 여성해방과 예술을 겸하여 생각하는 세이토 ( 靑 鞜 ) 의 사상 을 여기에서도 계속 피력하고 있다 . 한편 나혜석은 자신의 그림에 대하여 후기인상파적 자연파의 경향 53 ) 이라 하고 자아의 표현과 예술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 한다 . 54 ) 그런가 하면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 였다 . 55 ) 빛과 색채 , 자아의 표현 , 그리고 데생을 중요시하면서 예술의 본질을 늘 생각하 던 후기인상파 지향의 화가 나혜석은 초기에 원색을 즐겨 사용한 것 같다 . 선전에 출품하 여 입선한 < 지나정 > 에 대하여 쓴 글을 보면 “지금까지의 원색 , 강색보다 간색 침색을 써 보느라고 한” 56 ) 것을 보거나 , 이보다 먼저 쓴 글에서 지면의 색과 그림자 색을 좋아한다 52 ) “광과 색의 세계 ! 어떻게 많은 신비와 뛰는 생명이 거기만이 있지 않습니까 . 갑갑한 것이 거기서 시원해지고 침침 하던 것이 거기서 환하여지고 고달프던 것이 거기서 기운을 얻고 아프고 쓰리던 것이 거기서 위로와 평안을 받 고 내 맘껏 내 솜씨 내 정신과 내 계획과 내 희망을 형과 선의 상에 굳세게 나타내는 미술의 세계를 바라보고서 우리의 눈이 띄어지지 않습니까 ? 우리의 심장이 벌떡거려지지 않습니까 ? 더구나 오늘날 우리에게야 이 미의 세계 를 내놓고 또 무슨 창조의 만족이 있습니까 . 법열의 창일이 있습니까 . 더구나 무거운 전통과 겹겹의 구속을 한꺼 번에 다 끊고 독특하고도 위대한 우리의 잠재력을 활발히 발동시켜서 경이와 개탄과 恐縮의 대박 만인에게 끼칠 방면이 미술의 세계 밖에 또 무슨 터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후략 ) ” 「여자미술학사-화실의 개방 파리에서 돌아온 나혜석 여사」 , 『삼천리』 , 1933 . 3 , 『전집』 , 550쪽 . 53 ) “나는 학교 시대부터 교수받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상 후기인상파적 자연파적 경향이 많다 . 그러므로 형체 와 색채와 광선에만 너무 주요시하게 되고 우리가 절실히 요구하는 개인성 즉 순 예술적 기분이 박약하다 . 그리 하여 나의 그림은 기교에만 조금 진보될 뿐이요 , 아무 정신적 진보가 없는 것 같은 것이 자기 자신을 미워할 만 치 견딜 수 없이 고로운 것이다 . ” 그리하여 “구도를 생각하고 천후궁을 찾아갔다 . ” 나혜석 , 「미전출품 제작 중에」 , 『조선일보』 , 1926 . 5 . 20~ 23 , 『전집』 , 507 ~ 509쪽 . 54 ) “후기인상파의 화가들은 자아의 표현과 예술의 본질을 잊지 아니하였다 . 즉 예술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개체화하 려고 하였다 . 그들은 고래로 전해오는 미와 추의 무의식한 것을 알았다 . 미추를 초월하여 인정미로 만상을 응시 하여 인생과 같은 값되는 작품을 작하려 하였다 .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이 설명이 아니오 , 인격의 표징이오 , 감격 이었다 . ” 나혜석 , 「파리의 모델과 화가생활」 , 『삼천리』 , 1932 . 3 , 『전집』 , 526 , 7 쪽 . 55 ) “데생은 윤곽 뿐의 의미가 아니라 칼라 즉 색채 하모니 즉 調子를 겸용한 것이외다 . 그러므로 데생을 확실하게 한 모델을 능히 그릴 수 있는 것이 급기 일생의 일이 되고 맙니다 . ” 나혜석 , 「이혼고백장」 , 『삼천리』 , 1934 . 8 , 『전 집』 , 452 쪽 . 56 ) 나혜석 , 미전출품제작 중에 , 앞의 글 , 512 쪽 . 나혜석이 쓴 수필 「만주의 여름」은 그림 < 지나정 > 을 감상하기에 더없 이 도움이 되는 글이다 . 만주 여름의 묘사가 놀랍다 . 『신여성』 , 1924 . 7 , 『전집』 , 222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