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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 늦은 봄 저녁공기는 자못 선선함을 느꼈다. 동문(수원 : 인용자)을 들어서니 높이 보이는 연무대는 옛 활 쏘던 터를 남겨두고 사이로 흰 하늘이 보이는 기둥만 몇 개 달빛에 비취어 보인다. 그 옆으로 자동차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은 과연 연인 동지 Y 와 K의 발자취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길을 휘돌아 나서니 나타나는 것이 달빛에 희 게 벚꽃이 흐무러지게 피어 있다. 꽃 사이로 방화수류정 화홍문이 보인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점심 찌꺼기로 남겨놓은 신문지 조각이 바람에 날리고 있을 뿐 인적은 고 요하다.43 ) - 홍류동(해인사 : 인용자)은 실로 진외의 선경이다. 바위와 돌, 돌과 바위에 사이와 사이로 유유히 흘러내려 성산정 앞 높은 석대 위에 떨어지는 웅장한 물소리, 무성한 나무, 흉금을 서늘케 하고 머리를 가볍게 한다.44 ) - 거기서 나와 북으로 뚫린 좁은 길로 조금 내려가 도랑을 건너 한참 올라간다. 올라 가다가 숨을 쉬고 숨을 쉬어 올라가니 낭떠러지에 조그마한 기와집 암자가 있다. 이 것이 희랑조사가 기도하던 希朗臺이다. 대 뒤에는 천년이나 된 보기 좋은 소나무가 있어 일견에 남화의 격을 이루고 있다. 45 ) - 건물(影子殿)의 구조는 현재 조선 목공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 여 각처에서 목공이 와서 도본을 그리어 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유화의 재료로도 훌륭하다.46 ) - 그러고 나서 여관 동북에 있는 국일암을 찾아 갔다. 건설연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고건물일다. 사람도 그리 없는 듯하여 쓸쓸하였다. 정문 앞에는 고목의 괴목이 있어 역시 유화 재료로 훌륭하였다.47 ) 43 ) 나혜석 , 「독신여성의 정조론」 , 『삼천리』 , 1935 . 10 , 『전집』 , 372 쪽 . 44 ) 나혜석 , 「해인사의 풍광」 , 『삼천리』 , 1938 . 8 , 『전집』 , 293 쪽 . 윤범모는 < 해인사 홍류동 > 이라는 그림을 나혜석의 해인 사 풍광이라는 글에 인용된 최치원의 시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하였다 . 윤범모 , 『화가 나혜석』 , 앞의 책 , 244 쪽 . 45 ) 위의 글 , 『전집』 , 300 쪽 . 46 ) 위의 글 , 301 쪽 . 47 ) 위의 글 , 302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