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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강 _ 나혜석의 문학과 미술 이어 읽기 | 123 음률을 이용하여 지금까지의 위치를 전혀 뜯어 고치게 된다. 자기를 도기 옆에다도 놓아 보고 칠첩반상을 칠기에도 담아본다. 주발 밑에는 큰 사발을 받쳐도 본다. 흰 은 쟁반 위 로 노르스름한 전골방아치도 늘어본다. 큰 항아리 다음에는 병을 놓는다. 그리고 전에는 컴컴한 다락 속에 먼지 냄새에 눈살도 찌푸렸을 뿐 아니라 종일 땀을 흘리고 소제하는 것은 가족에게 들을 칭찬의 보수를 받으려 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것도 다르다. 경희는 컴컴한 속에서 제 몸이 이리저리 운동케 되는 것이 여간 재미스럽게 생각되지 않 았다. 일부러 빗자루를 놓고 쥐똥을 집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밑줄 인용자) 18 ) 인용 중 밑줄 친 부분에서 보듯이 여기에서도 색과 색의 조화 , 음악의 장단 음률이 등 장하고 있다 . 색과 색의 조화 , 음악의 장단 음률을 따라 배치를 달리해보면서 구도를 잡고 응용해보고 있는 것이다 . 불을 때거나 소제하면서 부딪치는 일상에서도 미술적 시각과 논 리의 적용을 쉬지 않는 미술학교 학생 경희를 여기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 소설 속에서 경희는 김치도 담그고 불도 때고 다락 청소를 하는 등 가사노동 , 즉 일을 즐겨서 하고 있 는데 위에서 보듯이 일을 하면서도 예술적 영감을 얻고자 내면으로는 끊임없이 모색을 그 치지 않는 경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여학생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씻으려는 의도만 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경희의 뜨거운 열정이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줄긋기를 해볼 수 있는 성격묘사이기도 하다 . 『세이토』의 창간호를 보면 경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나혜석의 생각이 창간호에 실 린 내용과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앞에서도 보았듯이 라이초의 글과 나혜석 의 주장이 상당히 근접해 있다 . 이를테면 가사노동이 ‘숨어 있는 천재를 발현함에 있어 부 적당하므로 모든 가사의 번쇄 ( 煩 瑣 ) 를 싫어한다’는 라이초지만 시라카바 ( 白樺 ) 의 로댕호 ( 특집 ) 에서 영감 ( 靈感 ) 을 기다리는 예술가를 비웃었다는 로댕에 공조하는 대목은 「경희」 의 경희가 일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보이는 대목을 설명할 수 있다 . 로댕처럼 일하면서 영 18 ) 나혜석 , 「경희」 , 『전집』 , 114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