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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진주시교구는 1894년 4월(음력) 초순께 시천면 내대리에서 백낙도 대접주(大接主. 동학농민혁명의 대단위 조직인 포의 책임자)를 중심으로 500여 명의 동학농민들이 봉기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백낙도 대접주는 보름여 만에 관군에 체포돼 참형을 당했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의령, 사천, 고성, 남해, 함안, 진주 등 서부 경남지역으로 확산했다. 주탑은 천지인(天地人) 3단으로 하늘과 땅, 사람이 우주와 일체임을 형상화했다.  좌우 보조 탑의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은 당시 농민혁명군의 슬로건이다. 높이는 1894㎜로 1894년 봉기한 것을 상징했다. 뒷쪽 원기둥은 동학혁명과 조선 정부에 대한 폐정개혁 12개조를, 주탑의 횃불 모양은 내대리에서 동학농민 횃불이 오른 것을 각각 형상화했다. 출처 : 일간 리더스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