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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구름 한형석 선생(1910~1996) 1910년 2월 21일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애국지사이자 부산 최초의 양의사로 현 동래 대동병원을 설립한 부친 동해(東海) 한흥교를 찾아 5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 노하(瀘河) 고급중학교, 상해 신화(新華) 예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33년 「신혁명군가(新革命軍歌)」등 항일가곡을 작곡하였고, 이후 광복군 2지대 선전대장과 중국 중앙간부훈련단 교관을 역임하면서 작곡 및 가극 창작 공연으로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광복군과 중국군 연합전선을 한층 견고히 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광복군 제2지대가」.「조국행진곡」.「압록강행진곡」(초등학교 4학년 음악교과서 수록)등을 작곡하였으며, 「광복군가집」 제1집(등록문화재지정)과 제2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가극「아리랑」과 「한국의 한 용사」를 작곡해 무대에 올리면서 연출과 주연을 맡기도 했다. 해방 후 선생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이곳 부민동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청빈한 선비로 살면서 부산의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고, 부산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양성에 헌신하였다.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자유아동극장" "색동야학원 옛 터" 이곳은 한국전쟁으로 부모 잃은 고아들과 부랑아동들을 위하여 문화예술 교육을 펼친 한국 최초의 아동전용극장인 자유아동극장과 일반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쳤던 색동야학원이 있었던 자리이다. 자유아동극장은 선생이 사재를 털어 1953년 8월 15일 설립하였다. 이곳에서는 2년 동안 명작동화를 각색한 영화와 아동극, 인형극 등이 상연되었는데 하루 3회, 총 500여 회 공연으로 11만 명 이상이 관람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자유아동극장의 공연물들은 이후 성행하게 되는 아동극의 효시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극장은 밤이 되면 야학원으로 변신했다. 1954년 4월 8일 개교한 색동야학원에서는 9~17세의 전쟁고아나 무취학 아동 94명이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뉘어 산수.과학.음악.국어.사생.보건.미술.공작 등을 배우며 향학열을 불태웠다. 먼구름 선생의 아동교육철학은 자유아동극장 창립취지서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