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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9일 관아를 습격하였으며, 이어서 부악산(셜봉산)에서 일본군과 전 투를 벌리기도 하였다. 이듭해인 1895년 을미년에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전국적인 의병운 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올미의병이라 부른다. 경기도 각 지방에서도 활 발한 의병항쟁이 전개되었으니 이때 경기의병의 중심무대가 되었던 곳 이 이천이었다. 그후 을사년과 정미년에도 이천 의병들의 항쟁이 매우 활발하였던 탓에 일본군의 보복으로 이천읍 시가지의 절반 이상이 불타 없어지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고장은 한말 의병항쟁의 중심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많 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한 고장이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실들에 대해서 우리들 자신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올해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고장의 독립운 동 사설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배워서 그들이 남긴 숭고한 애국정신 파 민족애를 본받아야겠다. 2. 을미의병파 이천 고총 32년인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 각 지 역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경기지역에서도 이천을 비롯한 광주 • 여 주· 시홍· 안성 ·죽산·포천 • 양근· 양주 등지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 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이천의 의병항쟁이 눈에 띠게 활발하여 경기의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