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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군 도령장 방춘식과 상의하여 포군 1백명을 우선 선발하였다. 선발된 포군 1백명올 여러 대로 나누어 구연영 • 조성학 • 김태원 • 신용희 퉁이 인솔하고 양근 • 지평 • 광주 • 안성 • 음죽 둥지로 흩어져서 군사를 모으 게 하였는데, 조성학은 광주산성으로 가서 별패진 포수 3백명을 모았고, 구연영은 양근 • 지평의 군사 3백명올, 신용회는 음죽 • 죽산지방에서 화 포군 3백명을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태원은 안성으로 가서 그곳에 서 봉기한 의병대장 민숭천을 합류토록 하였고, 그 밖에 안성 • 포천 • 시흥 • 수원 퉁지에서도 의병들을 모아 부대를 편성하였다. 의병부대의 명칭올 이천수창의소(利川守f昌義所)라 정하고, 창의대장 에 민숭천, 도지휘에 김하락을 비롯한 각 부서의 책임자를 정한 다음,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한편 작전계획을 세우는 퉁 크게 기세를 떨쳤다. 광현(넓고개)전투는 이천수창의소가 결성된 후 일본군을 상대로 하여 벌린 첫번째 전투이다. 1986년 1월 17일 일본군 수비대 100여명이 이천 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는 척후병의 보고가 들어왔다. 이천수창의소에서 는 의병들이 대부분 전투경험이 없는 일반백성틀 임을 감안하여 복병전 술을 쓰기도 하고, 조성학 • 김태원 • 구연영 • 신용희 퉁이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넓고개를 중심으로 야산에 매복하여 일본군 수비대를 기다리 고 있었다. 이튿날인 1월 18일 일본군이 나타나자 먼저 조성학의 부대 가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적을 맞아들여 두 시간 가량 격전을 벌리던 조성학이 갑자기 쇠북을 울리며 퇴군하니, 적병이 고함을 치며 뒤를 따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