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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 장경광 장군의 동학농민혁명 추념비 장경광장군(1866~1922, 본명 상호, 호 경암, 30世)은 1894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전하시어, 반제 반봉건 반부태의 혁명정신이 깃든 '大同世上'을 선언하셨는데, 조일연합군이 무력 진압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특별법에 의거하여 설치한 동 심의위원회에서 장군의 명예회복 신청은 수년간 조사와 심의를 거쳐 2009년 1월 제577호로 신원하고 유족 장병태외 68명을 등록했다. 장군은 1866병인년 부 鉉默 모 成岩(한양조씨)의 독자로 출생하셨다. 장군의 유년시절, 병인.신미 양요를 격퇴한 흥선대원군은 1871신미년 함평 주포 놀이터에 척화비를 세워 반외세 사상을 선무했는데, 조부(志衡, 28세)는 당시 한성부 좌윤(서울부시장)에 재임하셨다. 장군은 29세인 1894년 4월,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 때 세운 함평집강소(혁명사령부) 서기(책임비서)를 맡아 혁명과업을 수행하셨고, 그해 9월 , 2차 봉기 때 제폭구민. 보국안민.척양척왜 사상을 선무하며 활약하시다가 긓 12월, 일본군까지 연합한 무력진압때 현상 수배되셨다. 장군은 조부모. 부모, 숙부모(鉉伯 29세).배우자 呂氏가 연좌제로 몰살당했는데, 문중 도유사를 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