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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찬공 장백림(6세)께서는 1150년 과거에 급제하셨고 1170년에 고려무신정변 후에도 우참찬(부총리)을 역임하시다 40년간 관직을 끝으로 1190년 무신정권에 의해 진도로 유배되셨다. 1193년경 복직되어 개경으로 올라가시다가 주포에서 내리셨고 양림 마을에 입향하셨다. 참찬공 장백림(6세꼐서는 양림에 정착하여 참찬공파 파조가 되셨고, 후학들도 양성하셨다. 6세 百林(백림)의 원모사에 이은 21세 宇翰(우한)의 충효사, 23세 南驥(남기)의 양림사는 모두 흥선대원군이 서울 철폐할 때 훼털되었고, 여기 24세 두갑의 경모재만 사우로 지었기 때문에 유지되었다. 동학농민혁명 때 함평읍내에서 집강소를 짓기로 하고 1894 6월경 임시로 여기 경모재에데 함평집강소를 설치했는데 그해 연말 동학농민혁명이 유혈진압되면서 집강소도 폐쇄되었다. 그후에는 예비군훈련장으로 할양된 것을 보더라도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