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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모재는 가선대부 호조참판(기재부차관) 인동장공 두갑(1694~1775)의 사우다. 위의 사진은 1990년에 촬영한 경모재 원형이다. 동학농민혁명 함평집강소 터 1914년 호남선 철길개통 전에 구한말까지는 고려개경이나 조선한양에서 이곳 함평 광주 이남을 오가려면 당시에는 항, 포구 뱃길이 유일한 조운로였다. 그렇게 함평만으로 입출항하는 길손과 화물을 실어 나르던 수레와 인마들도 모두 여기 앞길 주포로를 이용했다. 그래서 병인, 신미양요를 이긴 흥선대원군도 여기 주포해안에대 척화비를 세웠던 것이다. 지금 그 척화비는 함평군청으로 옮겼다. 주포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지명에다 술주(酒)자를 썼는데, 주포가 옛날에는 술도가로 유명한 전국적 물류포구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지금이야 술이 값싸지만, 옛날에는 술은 쌀로만 빚었기 때문에 아주 비싸고 귀한 음료였다. 일제가 쌀 공출을 늘리기 위해서 쌀로 빚는 일을 단속하고, 대신에 값싼 희석식소주를 들여온 후로 알코올중독이란 병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