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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약사 조선 왕조 말기인 1890년 대에 들어서면서 벼슬 자리를 돈으로 사고파는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혹심한 학정과 이들을 등에 업는 악덕 양반 지주들의 과중한 소작료 착취와 장리벼의 고리 수탈로 말미암아 백성들은 억눌리고 헐벗고 굶주림에 허뎍였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과 무식의 대물림이 되풀이 되는 암담한 세상에서 백성은 한탄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내며 새로운 세상이 오기만을 갈망하고 있었다. 마침내 억눌린 백성들의 분노가 충천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접주 전봉준을 대장으로, 손화중, 김계남을 부대장으로 죽창과 몽둥이를 든 농민군이 고부 관아에 처들어가서 악덕 군수를 몰아내니 억눌리며 숨죽이고 살던 백성들이 동학군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그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동학농민군은 단걸음에 전주감영을 접수하고 전라도 여러 고을에 집강소(執綱所)를 열어 광제창생(廣濟蒼生)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개혁정치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공주 우금치에 이르러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 앞에 맨몸으로 맞서다가 처절한 항쟁 끝에 끝내 패하니, 오호라 하늘이 무심하구나. 전봉준 대장은 순창에서 잡혀가 처형되고, 수많은 동학군이 남으로 밀리다가 장흥 석대뜰 전투를 긑으로 흩어지니 아아 참으로 절통하고 허망하도다. 그러나 백성들이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았다. 조정은 갑오경장의 개혁을 단행하였고, 동학에 몸 담았던 손병희 선생이나 백범 김구 선생은 동학사상의 맥을 이어 독립운동의 선봉이 되었으며 조국 광복을 이룩하였다. 이에 만민평등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국가의 영광은, 실로 110년 전인 동학농민혁명 정신과 선열의 고귀한 흘린 피의 위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