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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개화 무렵 사직의 기강이 문란하여 탐관오리가 방호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며 봉건전제의 부패상이 극에 이르니 공이 비분강개하던 차 갑오년 민초의 선구자 전봉준이 제폭구민 보국안민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니 공이 결연히 동참하여 부안 기포의 한 두목이 되다. 공은 군졸을 지휘 변산 해안의 군기고를 접수하여 혁명군의 무장을 강화하고 전투훈련으로 사기를 앙양시켜 동년 4월 부안현의 함락에 크게 공헌하고 혁명군의 백산총집결 및 출진에 합세하다. 군은 승승장구하여 호남을 석권하며 북상하던 중 침략야욕의 왜군 개입으로 동년 11월 공주 우금치 대접전에서의 처절한 패퇴 후에 해산되고 그 주장들은 왜군에 체포되어 처형되다. 공 역시 끝내 굴하지 않고 항거하다 부안읍 동문 밖 총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니 을미년 2월 10일 향년 65 오호통재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충성을 어찌 잊으랴. 혁명좌절의 비탄은 구천에 사무치고 반역이란 누명은 반세기에 이르니 후손들 또한 무○에 살다가 민주조국 광복과 함께 동학인의 명예가 회복되니 만시지탄이나 공의 충절과 유덕을 추모하여 그 개요를 이 비에 각자하여 영원한 후세에 전하노라. 묘는 개암동 월정 입구 대마등 진좌 배 창녕조씨 윤성녀 순조 신묘생 고종 병신 12월 21일 종 향년 66 묘는 장전 후 거적산 동울 임좌자에 한봉 한장 낙준이며 손에 형술 맹술 정술 복술 만술 병술 성술 귀술 관술이요, 그 다음 가계별로 약간명을 기록하면 증손에 형석 형택 형호 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