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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309 활동이후 행적 (약 1,400명) 귀순자(약 100명) 1908년 약 100명 내외, 1909년 극소수 자수자(약 200명) 1908년 극소수, 1909년 약 200명 내외 체포자(약 900명) 전기·중기 의병 : 소수, 유배수 약 10명 내외 후기의병 1-4년형 : 80명 내외 5-9년형 : 90명 내외 10년형이상 : 100명 내외 종신·사형 : 60명 내외 전사자(약 100명) 전기·중기 의병 : 소수, 후기의병 100명 내외 기타(약 30명) 유배자 10명 내외, 독립운동 가담자 10명 내외, 은거자 약간명 그런데 김율 의병부대의 경우 가장 많은 구성원들이 밝혀져 있으나, 이는 이들의 加盟名簿가 일제에 被奪되었기 때문이다. 81) 文泰瑞 의병부대의 구성원들도 많이 파악되어 있다. 이들이 오랫동안 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체포 또는 자수자에 의해 구성원들의 인적사항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의진별 규모에서도 당시 유력한 의병부대의 구성원들이 많이 밝혀져 있다. 이는, 그들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후기의병 시기에 매우 많은 의병부대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평민주도의 의병부대로 널리 알려진 안규홍 의진 경우에도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파악되었는데, 이는 이들의 뛰어난 활동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한다. 광주-전남 의병의 출신지별 인적구성에서는 전남이 전북보다 더 많은 편이다. 郡別 통계에 의하면 전남의 경우에는 나주 함평 장성 영광 광주 順, 전북의 경우에는 순창 임실 태인 무주 부안 고부 순이었다. 전남의 경우에 유력 의병장의 출신지역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나주의 경우에는 김준·김율 형제, 함평의 경우에는 심남일, 장성은 기삼연 기우만, 광주는 조경환 양진여 김원국 등이 그러하다. 물론 서부지역 출신이 많은 점은 나주출신 의병장 김율 의병부대의 가맹명부가 피탈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이들의 사상적 기반의 동질성, 전기의병이후 지속적인 의병투쟁 등과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지역이 호남창의회맹소의 기반이었다는 점과 평야지대라는 점과 관련된다고 판단된다.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생존권을 위협받던 평야지대의 농민들이 의병에 투신하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점은 전북의 경우에도 평야지대인 서부지역 출신 의병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북의 경우에는 산간지대인 순창 임실 81) 『편책』, 『독운사』 9, 184-192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