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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대체로 1명씩 선정되었으나 전라도와 황해도는 각각 5 3명이 임명되었다. 아마도 전라도의 경우에 郡代表의 규모가 가장 많았던 때문에 道代表도 많았을 것이다. 전국에 걸쳐 군대표가 선정되었는데, 총 302명 가운데 전라도가 214명(전북 144명, 전남 70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어 충청도가 41명이었으며, 경기 경상도가 각 3명, 출신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41명, 나머지 다른 도의 군대표는 선정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이들의 동조자 규합은 전라 충청 경기도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25) 특히, 전북 태인 출신의 군대표가 가장 많았다는 점과 관련하여 임병찬이 그의 연고지역을 중심으로 동조자를 규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임병찬과 연관이 깊은 지역에서 군대표에 선정된 인원이 많았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즉, 그의 출생지인 전북 옥구와 그 인근 군읍, 그리고 그가 군수로 활동했던 전남 낙안이나 그 인근지역 등이 그것이다. 또한 충청도의 경우에는 최익현이 말년에 거주하던 충남 정산과 그 인근지역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또한 현재 발굴되는 독립의군부의 문건을 통해서 현존 문헌자료에서 확인할 수 없는 인물들이 독립의군부에 적지 않게 가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의군부의 구성원들은 대체로 의병계통의 인물이 많은 편이었다. 26) 특히, 의병계통의 인물들은 1906년 6월 전북 태인에서 최익현과 임병찬이 일으킨 태인의병에 관련된 인물들이 많았다. 이른바 ‘12의사’에 포함된 임병찬을 비롯한 고석진 김기술 문달환과 조재학 임병대 임응철 등과 같은 태인의병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독립의군부에 상당수 가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에는 최익현과 임병찬의 문인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서 망국 이전에 전라도의 태인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의병들이나 최익현의 문인들이 독립의군부의 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독립의군부가 조직다운 면모를 갖추면 임병찬은 곧바로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독립의군부의 지도부는 전국의 군단위까지 조직을 결성한 후에 독립을 목적으로 한 전국적인 長書運動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이른바 ‘大正 데모크라시’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전국에서 일제히 조선의 독립을 발표하고 나아가 세계 열강에 독립을 호소하려는 것이었다. 조선 사람을 많이 모아 단체를 조직하고 각 지방으로 연설 기타 방법에 의지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 다가 기회를 보아 각 지방에 일제히 조선독립선언을 발포하고 열국의 동정을 얻어 근본 먹었던 꾀와 뜻을 관철(매일신보 1915년 3월 16일자 「대담교휼 사기단」). 독립의군부의 핵심지도부인 임병찬 전용규 곽한일 김재순 등은 일본의 국내 정세를 나름대로 25) 「김재순 곽한일 전용규 이정로 판결문」, 0286쪽. 26)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934), 177-179쪽 및 신규수, 앞의 논문, 989-990쪽의 <표 5> 獨立義軍府 事件關係者 참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