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page

한말의병 271 총동원하여 전남지역 의병을 진압하려는 것이었다. 1909년 9월 현재 전남지역에서 활동 중인 의병의 규모에 대하여 일제는 경찰서 관할별로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표] 1909년 9월 전남지역 의병의 교전횟수와 피해현황 경찰서 교전횟수 의병규모 의병의 피해상황 전 사 부 상 피 체 피탈총기 광 주 16 230 3 - 3 21 나 주 3 133 1 - 4 - 목 포 3 41 - - 8 - 순 천 18 559 26 10 12 15 장 흥 1 40 59 2 160 101 제 주 3 10 - - 4 - 계 44 1,013 89 12 191 137 출전:『독운사』 15(국사편찬위원회, 1985), 560~561쪽. 1,000여 명의 전남지역 의병 가운데 절반 정도가 순천경찰서 관내에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의 [표]는 추정이기 때문에 그 규모가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느 정도의 경향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전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병 가운데 순천경찰서 관내의 의병들이 후기의병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는 여수를 비롯한 연해 도서지역의 의병활동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은 연해 도서지역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서 경비선을 배치하였다. 대한매일신보 1909년 9월 8일자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경비선 배치」 경비선 10척은 내부 경무국에 속하고 6척은 탁지 관세국에 속하였는데, 경무국 소 속 10척 내에 5척은 목포에 매고, 5척은 여수군에 매여 해남과 추자도로 줄포까지 관할하고, 여수 군 해안으로 해남과 추자도까지 관할하기로 작정 여수와 목포에 각 5척의 경비선을 소속시켜 관할구역을 확정하고 있다. 이후 내부 소속의 경비선단은 연해 도서지역의 의병 진압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으며, 탁지부 소속 경비선단은 어선 보호를 명목으로 密魚船 단속을 빙자하여 도입하였다. 336) 336) 『편책』, 『독운사』 1, 870-874쪽 및 대한매일신보 1909년 8월 8일자 「경비선소용」, 11월 21일자 「전남의병」,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