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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라고 있듯이, 1909년 3월까지 이들은 在留日本人을 축출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때 해남에서의 반일투쟁을 주도한 인물은 李德三인 듯하다. 그가 1909년 중반까지 해남 완도 등 지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아 그러하다. 271) 이덕삼은 심남일 의병부대의 起軍將으로서 출신지역은 영암, 본명은 金德仲으로 알려져 있다. 272) 한편,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의병들은 일본측의 진압을 피해 남쪽 연안과 도서지방으로 이동했었 다. 심남일 의병부대 역시 그러하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함평 나주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영암을 거쳐 해남에 까지 이른 것으로 추측된다. 때로는 일본측의 진압때문에 도서지방을 이용한 경우도 없지 않 았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심남일 의병부대의 활동 영역에 진도 연안이 포함되어 있다. 273) 안규홍 의병부대의 경우에도 활동지역에 완도 연안이 포함되어 있다. 274) 이로써 볼 때 1908년 말에서 1909년 초를 전후하여 전라남도의 의병들은 도서 연안 지역으로 이동하여 활동한 듯하다. 그래서 일본측은 당시 전라남도 해안 지방을 「의병의 巢穴」 275) 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1909년 초에 도서지방이 전라남도 의병의 주된 활동무대로 바뀌자, 이 지역에 있던 유배수 들이 정배지를 이탈하여 의병에 다시 투신하였다. 정배지를 이탈하여 의병에 참여한 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표> 定配地를 이탈하여 의병에 참여한 유배수 성 명 나이 출신지 직업 유배전 의병활동 지역(가담연도) 정배 기간 유배지 재가담 시기 재가담한 의병부대에서의 직책 활동 지역 黃俊聖(成) 27 전북 진안 유생 전북 태인(1907) 10년 완도 1909.5 李德三 의진 副將 ->독립 완도 해남 일대 秋琪燁(曄) 전북 익산 전 해산군인 전북 익산(1907) 10년 완도 1909.5 李德三 의진 前軍將 완도 해남 일대 黃成一 10년 완도 1909.6 (李德三 휘하 활동) 완도 해남 일대 吳長卿 40 경기 광주 농업 충북 진천(1907) 10년 완도 1909.6 鄭哲和 27 서울 경기, 충북(1907) 15년 완도 1909.? 의병장 진도 일대 李弼相 23 10년 완도 1909.1 의병장 해남 진도 일대 이들의 연령은 대부분 20대로서 청장년층에 해당되며, 모두 다른 지방 출신들이다. 또한 이들은 유배 271) 『편책』, 『독운사』 13, 727쪽 ; 같은 책 14, 441쪽 ; 같은 책 15, 141쪽 참조. 272) 『沈南一實記』, 『자료집』 2, 919쪽 및 『편책』, 『독운사』 17, 333쪽. 273) 『편책』, 『독운사』 13, 830쪽. 274) 위와 같음. 275) 大韓每日申報 1909년 2월 16일자 잡보 「營農者保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