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page

한말의병 243 일제는, “농업, 일찍이 훈장이 되었던 일이 있음. 다소 학식 있음” 214) 이라 하였는데, 실제 그는 관직을 역임한 적은 없으나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어 서당 훈장과 향교의 교임을 지낸 함평의 유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달리 강한 의기를 지녔던 것 같다. 215) 시골의 이름없는 유생에 불과한 그가 자신을 돌 보지 않고 오직 충의로써 일어나 3년 동안이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신문에서는 이러한 그를 대장부로서 재주가 출중한데다 병서와 중국의 협객전을 많이 읽어서 위망이 뛰어났다고 평하였다. 216) 이러한 점들이 그가 의병에 투신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삼연 김준 김율 휘하 에서 1907년 음력 9월부터 약 넉달간 활동하였다. 217) 기삼연을 비롯한 김준 김율 형제는 약 4,5백명의 의병을 규합하여 당시 전라도에서 가장 강력한 항 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차례로 일제 군경에 의해 체포되거나 전투중 전사하였다. 당시 심남일은 김율의 부장으로 활동하였다가 김율의 사후에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의병장이 되 었다. 218) 1908년 3월말 김율이 일제에 체포되자, 심남일은 흩어진 의병을 불러 모아 독자적인 의병부대의 결 성을 시도하였다. 그는 1908년 음력 2월부터 함평 남평 보성 장흥 등지를 돌아다니며 한두 사람씩 의 병을 불러 모았다. 219) 그리하여 그는 의병에 투신한지 반년 만에 비로소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조직하 였다. 220) 심남일 의병부대의 주요 부서는 다음과 같다. 의병장 심남일 모사장 권 택 서기겸모사 염원숙 모사 권영태 도집사 최유승 부집사 김덕오 박문기 선봉장 강무경 장인초 중군장 안찬재 박사화 후군장 노병우 나성화 도통장 김도숙 통장 유치선 공진숙 군량장 이세창 교도장 고견원 호군장 강달주 기군장 김치홍 금난관 전유문(홍영기, 앞의 책, 301-302쪽). 심남일은 먼저 의병부대의 지휘체계와 군율을 정하였다. 221) 의병장은 선봉장을 통제하고, 선봉장은 중군장과 후군장을 지휘하며, 중군장은 기군장과 호군장을 거느리게 하였다. 일반 병사층은 포졸 騎 214) 『편책』, 「義兵將 姜士文·安桂洪·黃斗一·權寧會·沈南一·姜武景取調書」, 『독운사』 1, 790쪽. 215) 「義兵將沈南一傳」 ; 『자료집』 2, 591쪽. 216) 대한매일신보 1909년 10월 16일자 잡보 「의병장피착」. 217) 『편책』, 『독운사』 1, 790쪽. 218) 『編冊』, 『독운사』 15, 817쪽. 219) 『編冊』, 『독운사』 1, 790쪽. 220) 위와 같음. 221) 「告示軍中文」, ; 『자료집』 2, 572쪽과 「軍門誓約」, 『南湖纂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