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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병 191 형세가 불리해지자, 의병들은 백낙구를 부축하여 포위망을 벗어나려 하였다. 이에 그는 “그대들은 떠나시오. 여기가 바로 내가 죽을 곳이오”라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백낙구가 여기에 있다”라고 외치는 순간, 일본군의 총에서 불이 뿜었다. 의병장 백낙구는 태인에서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이 때가 1907년 섣달이었다. 백낙구의 활동에 대하여 황현은 『梅泉野錄』에 “백낙구는 두 눈을 실명하여 전투할 때에는 언제나 교자를 타고 일병을 추격하였다. 그리고 패할 때도 교자를 타고 도주하다가 세 번이나 체포되었는데, 결국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라고 썼다. 의병장 백낙구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써 투쟁하였음을 알 수 있다. 광양 사람들은 백낙구의 발발한 기운을 못잊어 하였다고 한다. 요컨대, 백낙구는 대한제국기의 유일한 맹인 의병장이었다. 그의 감투정신과 반일투쟁은 전남 동부지역의 의병확산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상과 같이 중기의병은 성리학적 명분이나 근왕을 지향하였다기 보다는 국권수호투쟁, 즉 反侵略的·保國的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이들은 상소나 시위형태의 활동을 지양한 대신에 무력투쟁으로 선회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장기항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한계도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