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page

186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준비를 진행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가르쳤던 학동들이거나, 272) 능주 지역의 청장년들이었으리라 믿어진다. 바로 이들이 쌍산의소의 근간을 이루는 의병들이었을 것이다. 쌍산의소의 주요 구성원은 『행사실기』의 초간본과 『구한국관보』 등의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을 토대로 표를 작성하면 아래와 같다. [표] 쌍산의소의 주요 구성원 위의 [표]를 보면 첫째, 이들은 대부분 전라도 출신으로, 능주에 거주하는 자들이 특히 많다. 그것은 쌍산의소의 의병장 양회일이 능주를 지역적 기반으로 삼았음을 말해준다. 둘째, 혈연면에서도 몇 개의 가문에 집중되어 있다. 제주양씨·고흥유씨·평택임씨 등인데, 이들은 대체로 해당 지역의 유력한 집안이었다. 셋째, 지휘부의 핵심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으로 노사 기정진과 면암 최익현의 계열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위정척사사상을 계승하여 반개화적 성격과 春秋의 義理思想이 강하였다. 넷째, 주요 구성원 중에는 왜란이나 호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했던 조상을 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것을 내세워 의병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참모 박중일이 해당된다. 또한 호남지방이 충의의 고장이라는 점을 높이 사서 가담한 경우로는 선봉장 이광선을 들 수 있다. 다섯째, 쌍산의소가 해산된 후 체포를 모면한 일부 의병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의병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호남지역 후기의병의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컨대, 쌍산의소의 선봉장 이광선은 독자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군장 임낙균은 안규홍의 의진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도포장 유화국은 奇參衍이 이끄는 湖南倡義會盟所의 군량관으로, 그리고 호군장 안찬재는 沈南一 의병부대의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08∼1909년 사이에 활약한 전라남도의 중동부지방의 272) 梁會一은 1896년부터 약 5-6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바 있었다(『杏史實紀』 권 3, 「家狀」 참조). 직 책· 성 명· 本貫 거주지 學統 해산후활동 직 책·성 명·본 관 거주지 학통·해산후활동 盟 主 副 將 先鋒將 中軍將 後軍將 都砲將 總 務 犒 軍將 犒 軍將 軍 醫 書 記 參 謀 參 謀 參 謀 謀 士 梁會一 辛在義 李光先(彦) 林昌模 安淇煥 盧鉉在 崔基杓 柳炳珣 梁烈默 安贊在 林魯福 全信默 李秉華 朴重一 林相永 梁壽黙 朴用溪 李允善 柳以三 柳泰京 申泰煥 金大鉉 梁東黙 梁壽黙 林魯成 鄭世鉉 濟州 靈山 德水 兆陽 竹山 交河 慶州 高興 제주 順興 平澤 天安 廣州 珍原 평택 제주 廣州 고흥 고흥 平山 光山 제주 제주 평택 河東 綾州 능주 河東 寶城 南原 和順 井邑 능주 능주 능주 淳昌 능주 능주 능주 능주 驪州 보성 정읍 정읍 정읍 능주 능주 능주 同福 勉菴 蘆沙 松沙 勉菴 勉菴 再起義 은거 재기의 은거 은거 은거 재기의 옥중순국 은거 憤死 순국